누가복음 8장 10-15절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씨보다 때로 땅이 더 문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익숙한 말씀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씨’나 ‘씨 뿌리는 자’보다 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씨는 두 가지 특성을 나타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땅의 상태가 드러난다. 주일마다 선포되는 말씀은 누구나 똑같이 공평하게 듣고 있다. 하지만, 땅의 상태에 따라 열매가 맺힐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 중에 기본이 되는 비유다. 이 비유를 알지 못하면 다른 비유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막 4:13)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친절하게 비유의 뜻을 해석해 주신다. 비유를 통해 말씀이 내 삶의 자리 바로 옆으로, 내 삶 속에 던져진다.
마가복음에서는 ‘들으라’(막 4:3)로 이 비유가 시작된다. 즉, 쉐마(들으라)와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길가, 돌짝 밭, 가시떨기 속, 좋은 땅에 씨앗이 뿌려진다. 내 마음 밭은 어떤 땅일까? 좋은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길가와 같은 굳은 마음, 돌짝 밭과 같은 얕은 마음이다. 세상 근심 걱정과 염려, 쾌락과 욕심을 완전히 제하여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씨는 땅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땅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런데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씨’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씨’(창 22:17-18)이다. 크게 번성하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씨이다. 즉, 예수님이 유일한 씨이다.
우리가 그 씨를 품을 때 우리는 좋은 땅으로 변해갈 수 있다. 예수님을 늘 마음에 품고, 그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한다. 그럼으로써 30배, 60배, 100배로 점점 성장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