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관한 귀한 글 나눕니다. 

 

해마다 11월이면 추수감사주일을 지킨다. 미국의 추석을 교회의 절기로 기념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지만, 일 년에 한 번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기회로 삼는 교회가 많아졌다. 추수감사절에는 감사노트와 감사기도문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세상 속에서 교회 안에서 감사의 절기를 지킨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한 현실이다. 

성경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명령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감사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사의 고백이 문화와 동떨어진 우리만이 리그가 되어 세상과 단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적 감사노트를 활용하라  

추수감사절 즈음에 감사노트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양한 감사노트를 통해 감사를 생활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케빈 드영은 미친 듯이 바쁜에서 바쁨이 신앙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말하면서 영적인 침체에 빠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 말한다. 

하루의 삶에서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오늘날 감사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쁨이다. 미디어 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미래 사회를 꼬집었다. 인터넷과 SNS에 빠진 현대인은 홀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바쁜 현실에서 잠시 시간을 내서 감사노트를 활용하는 것은 오늘 내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는 좋은 경건의 훈련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땅에서 내가 받은 무엇을 향한 감사는 자칫 물질주의와 자연주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감사노트를 사용하는 법을 보면 이런 예시가 등장한다. “오늘 아침 식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사에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알람 소리를 듣고 깰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물질세계 안에서, 자연주의 세계 안에서 나에게 있는 무엇을 향한 감사뿐이라면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 노트와 다를 게 없다. 

물론 하나님이 없는 감사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차별성을 가지지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려면 물질세계 속에서 내게 주어진 무엇에 대한 감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감사가 세상 속에서 내게 주신 무엇에 대한 감사뿐이라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나보다 못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시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정신은 필요하지만, 어쩌면 풍성한 감사가 아니라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감사라도 붙들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메마른 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땅에서 감사할 수 없는 조건이 많은 이유는 이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죄로 인해 구조적으로 망가진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는 때로는 낙심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전도서이다. 데릭 키드너는 “잠언이 창조 질서를 강조하는 반면, 전도서는 그 질서가 뒤죽박죽 망가져 있음을 더 부각하고, 욥기는 이 질서가 대개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고 하면서, 지혜로워지려면 잠언뿐 아니라 전도서, 욥기라는 지혜서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팀 켈러는 오늘을 사는 잠언에서 이 세 가지 관점을 동시에 가질 때 비로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잠언은 하나님의 정해진 질서가 이 세상에 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대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면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창조 세계 안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신체적, 사회적, 도덕적, 영적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잠언은 명확하게 의인은 주리지 않고 악인은 주리게 된다고 말한다. 손이 부지런하면 부하게 되고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고 명확하게 정의한다.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3-4).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득세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사람을 속이며 게으른 사람들이 부하게 되는 경우를 본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고 실망하며, 감사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것은 잠언의 한 구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지혜서 전체를 통해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권유한다. 전도서는 잠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질서가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전 2:15).

전도자는 지혜자로 살건 우매자로 살건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한탄한다. 또 전도서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 

잠언은 하나님의 드러난 질서가 있다고 말하지만(God’s order Perceived), 전도서는 그 질서가 교란되어 있고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God’s order Disrupted). 또 전도자는 하나님의 질서가 왜곡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해 아래서’ 무엇을 찾기 때문이라 고백한다. 이 땅에 있는 물질 속에서 이 세상의 관점만으로 자연주의 세계관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질서가 다 왜곡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된 세상, 뒤틀린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 아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해 밖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주는 책이 욥기이다. 욥기는 하나님의 질서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God’s order Hidden). 욥기 1장에서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를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 말하면서,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 사탄의 요구를 하나님이 허락하시면서, 욥의 소유물을 사탄에게 맡기고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11-12). 

욥기 1장은 천상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보여주지만, 문제는 욥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어려운 현실을 통과할 때 욥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인생의 밤 중에 노래를 알려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이 과정을 통해 귀를 들었던 하나님에게 눈을 보게 되는 하나님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욥은 알지 못한다. 

팀 켈러는 “삶의 환난을 평온하게 맞이하고 이겨내려면 두 가지 진리가 다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절대로 우리의 고통을 즐거워하지 않으심을 알아야 하고, 둘째로 그 고통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오늘을 사는 잠언, 89). 

인생의 참된 감사는 부조리한 세상처럼 보이는 교란된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질서가 여전히 숨겨져 있음을 신뢰하는 것이다. 잠언은 명확한 질서를 이야기하고, 전도서는 그 질서가 꼬여있다고 말하지만, 욥기는 자세히 보면 꼬여진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겨진 뜻과 질서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도서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늘 부조리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해 아래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라 

욥은 예수님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했다면,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우리는 더욱 선명하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고통과 부조리를 가져가셨다. 이제 우리는 어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뒤틀리고 꼬여있는 현실을 만나더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숨겨진 질서가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어떤 부조리와 고난도 나에게 더 이상 정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다. 나 자신의 마음의 새로워짐도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아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빼앗기지 않는 감사는 내게 주신 무엇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이다.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땅엔 명확히 선포된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잠언). 그러나 그 진리는 세상 속에서 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왜곡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전도서). 그러나 그 왜곡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하면 여전히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욥기). 그것을 우리가 누리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의 대상이 하신 말씀이라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왜곡되어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겨진 질서와 뜻이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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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전재와 시간으로 나의 삶을 본다면 고통도 아픔도 슬픔도 감사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생긴다. 물론 오늘 말씀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선하시고 고통을 즐기시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노력 할 때에 감사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질서가 유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소망하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편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을 때도 감사가 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며, 감사를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하기 위해 이 좋은 글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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