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오실 때, 나는 낯선 사람이 아닐까?
2026년 10월 9일 금요일 / 요한일서 2장 28-29절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우리는 예수님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과 그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이름만 알고 지낸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자리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귀환은 다릅니다. 그가 오는 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기뻐합니다.
요한은 주님이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얻고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묘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나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분이 아직 오시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인가?
주님이 오시면 내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아직 이루고 싶은 일이 남아 있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주님의 재림은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불편한 소식일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주님 없이 완성하고 싶은 인생을 붙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림 신앙의 진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주님의 오심을 말하느냐보다, 주님이 지금 오셔도 기꺼이 그분을 맞이할 수 있느냐에서 드러납니다.
그런데 요한은 갑자기 의로움과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이야기합니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난 생명은 반드시 그분의 성품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생명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 존재의 흔적을 남깁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의 삶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종교적인 행동을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가 아닙니다. 내 삶의 방향이 누구를 닮아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앙의 활동은 늘렸지만 그 생명의 열매는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오늘의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재림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종교적 위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주님의 빛 아래 세우는 사건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나는 그분께 무엇을 보여 드릴 수 있을까요? 완벽한 삶이 아니라, 그분의 의를 사랑하고 그분을 닮아 가려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의 의지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의 생명에서 흘러나옵니다.
기도
주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정작 주님 없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더 사랑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미래의 사건으로만 남겨 두지 않게 하시고, 오늘의 관계와 선택과 삶의 방향 속에서 주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이 오시는 날이 낯선 분을 마주하는 두려운 순간이 아니라, 사랑하고 따르던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