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 예배
하나님의 교회라면 그 어떤 교회라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 교회가 해야될 다른 일들, 즉 교육, 선교(전도), 봉사의 일들과 함께 반드시 행해져야 할 것이 예배이다. 일반적으로 신학적 이론으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바로 앞서 열거한대로 예배, 교육, 선교, 그리고 봉사라고 정리 할 수 있다면 이들 중, 교육과 선교 그리고 봉사는 모두 우리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 행해지는 일들이다. 신앙의 자손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진리들을 교회는 가르쳐야 한다. 이 교육의 사명을 소홀히 하고 행치 않음으로 인해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 사사시대라는 영적 암흑기를 맞이한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교와 전도는 초대교회 시작과 함께 주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지상명령이라는 대 명제하에 대부분의 교회가 엄청난 재정 투자와 함께 힘을 쏟고있는 분야이다. 뿐만 아니라 , 봉사와 구제라는 교회의 실천 사역 분야 또한 서로 섬김을 교회의 이름으로 행함으로서 가장 힘 있는 설득력을 가지며 교회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사명이다. 이렇듯이,
교육과 선교 그리고 봉사의 일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급해주시는 힘과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서로 나누는 것이며 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의 초청인 것이다. 하지만 예배는 다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과 지혜로, 그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분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물론 각 사역의 기능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 네 가지의 교회의 모든 활동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서 함께 이루어 지는 것은 사실이며 특히 요즘과 같은 너무나도 다양한 문화적 상황속에서의 교회의 바람직한 사역을 고찰하며 연구한다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들은 각기 다양한 기능을 서로 나누며 또한 그것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방법에 있어 수용과 적용은 그때 그때 변할 수 있지만 그 수용과 적용의 물줄기가 본질의 핵심까지 희석시킨다면 그 어떤 실제의 논리도 더 이상 바람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향하는 상승 수직적인 교회의 사역은 유일하게 예배뿐이다. 하나님의 소유물로서 교회가 존재하며, 그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야 하는 교회로서 , 가장 섬세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사역이 바로 그 소유주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예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섬기는 현재의 교회들이 이러한 예배 분야에 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으며 얼마만큼 연구하며,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책임이 주어진다.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만큼 생동력이 있으며, 드리는 모든자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지는, 그 예배의 현장에 있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얼마만큼 예배드리는 자로서 준비되어 있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예배의 인도자 뿐만 아니라 예배 드리는 모든 자들, 소위 말하는 평신도들 모두가 예배는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 하기에 어떠한 행태가 바람직하며,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 따위에 대해 알아야 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예배드리는 자들은 예배를 통하여 영적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분의 영광을 두려워 할 정도의 감격을 체험하는 동시에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확신해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만약 예배를 통해 자신이 갖고있던 고민이나 걱정따위가 해결 된다든지, 힘들었던 마음이 위로를 얻는다든지, 자신의 잘못된 점을 회개 한다든지, 이러한 것들은 예배가 가져야 할 충분 조건들이다. 그러한 따위의 이유들로 우리에게 예배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며 부흥 사경회이다.
예배의 필요조건은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의 인도자는 자기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모든 백성들의 예배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교회의 예배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들은 예배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야하며, 뿐만아니라 실천적으로 여러가지의 것을 철저한 준비와 함께 시행,
분석하여 예배를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교인들이 얼마만큼 예배의 감격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늘 점검하면서 예배 드리는 자들이 평신도들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목회자들의 개인 도서관에는 예배에 관한 도서들이 많을수록 좋다.
아니 많아야 한다. 현재의 예배의 이론과 실제가 어떠한 조류를 타고, 흐르고 있는 지에 대해 늘 감각있게 대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배에 관한 공부를 평신도들에게 시켜야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역사, 성경적 예배론, Contemporary Worship, 등등 예배에 대해 평신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성경공부가 아주 원활한 교회에서 조차도 예배에 관한 조직적인 교육이 없는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심지어 요즈음 많은 교회에서 받아 들이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소위 ‘열린예배’의 형식도 아무런 신학적 검증과 준비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우며, 젊은이들의 예배에 대한 개인신앙이 너무도 자유자재대로 방치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교회의 리더급에 있는 평신도 사역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 예배에 관해 관심이 많은지 섬뜻 놀랄 때가 있다. 왜냐하면 어른 세대인 그들과 자녀들의 세대가 너무 현저하게 틀림으로서 인해 오는, 예배의 이질감의 문제 때문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을 나무래고 어떤 부모들은 세대차 이거니 하고 이해하는 듯 방치 해 둔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보면, “목사님
, 도대체 예배가 무엇입니까?” 라는 원리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자주 있다. 교회가 해결해 줘야한다. 마치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교회에 예배드리기위해 오면서도 예배의 영적인 의미에 관해 모른다면 말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분들이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설교만을 듣기위해 예배시간에 앉아 있거나 , 성가대의 찬양시간에 그저 보고 있거나, 헌금시간에 자기 앞에 헌금쟁반이 오면 헌금 내고 , 아무 생각없이 기다리거나, 대표기도 시간에 엉뚱한 생각 하거나….. 아니면 그저 왔다 가거나…. 만약 예배가
끝나고도 ‘하나님이 기뻐 하셨다’ 라는 감격이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교회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