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마음
현대를 살고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묻고싶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 분을 사랑하십니까?’ ‘ 만약 그분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아야한다. 그분은 찬양 받으시기를 참으로 좋아하신다. 예배와 경배 받기를 원하신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예배하는 모든 백성들을 그의 길로 인도하시고 보살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완벽한 관계를 맺기 원하셔서 독생자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믿음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심으로 , 당신과의 관계를 시작하셨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이다. 참으로 간단 명료하다. 다른 말로 말해서 ,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고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재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다짐하는 것이 예배이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배는 앞뒤가 바뀌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예배를 드린다. 상한 심령과 지친 영을 위로 받기 위해 예배를 드린다. 머리는 올바른 예배를 알고 있지만 마음은 기복신앙으로 충만하다. 말로는 주님을 경배하고 있지만 심정은 세상의 삶에 연연하고 있다. 경배와 찬양의 노래를 부를때는 감격이 없고 , 기도의 노래를 부를때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한다. 설교를 들으러 예배에 온다. 다른순서는 몰라도 축도는 꼭 받고 가야 한다.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아무 조건 없이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는 기독교의 예배 밖에는 없다. 뭔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경배를 드리는것은 , 세상의 모든 미신적 종교의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가 당신을 찾기를 원하신다. 경건한 순종의 결심을 하기를 원하신다. 충성의 결단을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구체적 삶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힘을 바라는 기도를 듣기를 원하신다.
어떤 교회든지 어떠한 예배든지 정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지키는 것부터 우리의 예배드리는 마음은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정한 시간 이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가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음악 역사적으로 가장 심도있게 준비되어 온것이 예배전 전주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과거의 믿음의 선배들은 예배를 시작하기 전부터 경건한 마음을 준비했다는 뜻이다. 최소한
10분 전까지는 예배 처소에 들어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는 자가,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자가 허겁지겁 도착하여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리겠는가! 예배는,
믿는 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하여 가장 멋있게 드려야 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교회의 모임이다.
설교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설교만 듣기위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배와 찬양시간이 끝나고 대표기도 할 즈음에 들어와 , 설교를 열심히 경청하고 마지막 기도할 때에 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 절대로 아니다! 현대 예배가 세속적으로 사람의 취향에 이끌려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설교하는 목사들이 설교를 잘 ( ? ) 하려고 노력하는데 있다 . 설득력 있는 유머와 응집력 있는 웅변술 ! 이러한 현대의 기술에 서투른 목사들은 소위 말해 인기가 없다. 설교 한번만 잘
( ? ) 해도 목사들은 한 주가 편하다는 말이 있다. 설교 한 편에 마음에 은혜를 받은 교인은 기쁨이 충만하다. 더 이상 예배의 모습이 아니다. 부흥 사경회의 한 단편적 모습이 예배드리는 자들의 마음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설교자들은 예배 드리는 자들이 예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포괄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예배 드리는 자들의 마음은 일편 단심이어야 한다. 예수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 세상의 먹고 사는 일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 본 사람들이 아닌가 ! 세상 살아가는 방식과 욕망을 그대로 예배에 가지고 와서는 아니 된다. 살아가는 것이 예배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예배의 조건은 감사하는 마음 뿐이어야 한다. 삶의 조건이 자기의 충분한 만족에 이르렀을 때에 감사하는 사람과 ,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매력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