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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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시대 이후의 찬송은 교회음악의 변천사 속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교회사에서 이들을속사도라고 부릅니다) 의해 세워지고 인도 되어졌던 시대를 우리는 초대교회 시대라 부르지요. 이러한 초기 초대교회의 사명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찬송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선포함과 아울러 문학의 발달과 함께 예수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래의 시도가 교회에서 유행처럼 읽혀지곤 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로마를 중심으로 북방 유럽으로 흘러갔듯이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라는 영적 공동체 또한 강한 성령의 바람을 입어 유럽의 문화를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와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속 권력으로부터의 핍박과 학대를 통해, 그리고 지극히 세속적인 타문화와의 전쟁을 통해 교회의 믿음과 순결을 강하게 세우셨습니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치고 힘든 현실 속에서 교회는 구원주가 되시는 예수를 찬송하였고, 찬송을 부름으로 믿음의 공동체임을 더욱 공고히 했던 것입니다. 신에 대한 개념도 틀리고 신을 섬기는 신앙생활 또한 판이하게 틀린 세속문화에 부딪쳐,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 선포하며 분을 찬송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는 신앙의 선조들이 시대의 교회음악 역사에 자리 매김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내부에서 시작되어진 이단의 출연으로 기독교 교리가 위협을 받게 되자, 교회는 심각하게 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리의 전쟁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위협했던 것은 바로 예수의 신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이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단의 사상은 교회가 부흥하고 예수를 구원주로 선포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조차 이러한 이단 사상에 물들어 있음을 교회의 리더들은( 시대의 교회를 치리하고 인도했던 분들을 교회사에서는교부들이라 부르고, 또한 시대를교부시대 합니다) 예수가 구원주 되심과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기 위해 찬송을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시대에 불렀던 찬송의 내용 중에, 가지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구찬송가 85,
구주를 생각만 해도“).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내리심으로 교회는 점차 더욱 인정 받으며 유럽으로 퍼져갔고,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 또한 인정 받는 자들이 되어, 세속 군주들과 함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갔습니다. 자기들의 권위와 자리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교회의 모든 것을 이용했고, 세속의 힘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세속적 무력을 키우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것에 따라 각기 신분이 결정 되고, 신분에 따라 전혀 다른 각층의 문화가 형성되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교회는 싸우지 못하고 오히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앞장서 일조하였던 시기를 맞이합니다. 이러한 무력한 교회의 역사 흐름 속에서 교회는 찬송의 진정한 기쁨을 잃었고 찬송의 시간은 형식적 예배 순서에 지나지 않았으며, 게다가 교회문화의 귀족화에 따라 일반 평신도들 모두가 함께 노래하는 회중찬송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찬송의 가사는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어, 일반 서민들은 그나마 교회 안에서 찬송을 있는 기회마저 잃어 버린 것입니다. 단지, 교회의 리더급에 있던 귀족들의 사치스런 점유물의 하나가 찬송이었던 것이지요. 서민들은 자기들의 애환과 하나님께로 향한 기도의 마음으로 자기들만의 노래를 따로 만들어, 마치 유행가처럼 서로들 모였을 흥겹게 부르곤 했던 것을 교회음악 역사의 자료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흑기로 인해 뒤틀려져 있던 교회의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몇몇 준비 되어진 일군들을 통해 바로 잡으십니다. 말틴 루터, 칼빈 같은 분들이 시대에 교회의 개혁자들로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분은 교회음악의 영역에 있어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회중찬송이 회복되었으며 찬송의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전에 쓰이던 라틴어 찬송은 전문 성가대의 몫으로 변환되었고 평신도들의 실생활 용어로 새로 작곡되어진 노래들이 예배시간에 사용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농노의 생활을 하고 있던 성도들을 위해 그들이 술을 마시며 불렀던 유행가에 가사만을 바꿔 예배음악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던 과감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찬송의 내용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했으며 마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 속에서 승리의 노래를 찬송으로 불렀던 것처럼, 문화의 차별된 억압 속에서 해방된 기쁨을 교회 안에서의 찬송을 통해 만끽했던 것입니다.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치적 통제로 인해 마음 속에 묶여 있던 불만들이 찬송이라는 분출구를 통해 마음껏 발산 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말틴 루터의 보존되어 있는 편지는 당시에 성도들이 찬송을 남용, 혹은 오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는 마음을 동료 작곡가에게 전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단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높혀드리고 인정하며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렸던 초대교회의 찬송이 역사적 정황의 변함에 따라 어떻게 함께 변해 왔는지를 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전개되어진 찬송 역사의 흐름이 교회의 흐름에 동승하여 영국과 미국의 교회로 들어가게 됩니다. 과연 곳의 역사적 정황에 따른 찬송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는를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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