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복된 글 (해돈 엔더슨) 나눕니다.
2021년,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알려졌던가? 무엇이 교회의 특징이 되었던가?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을 대신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우리는 비신자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구별하여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비신자들이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보여주는 존재로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비신자들이 그리스도인 개개인이나 지역 교회들을 바라볼 때, 거기서 세 가지 핵심 교리, 곧 믿음과 소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복음이 만들어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충만한 사람,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실제로, 바울 서신과 베드로 서신, 그리고 히브리서 곳곳에 있는 아홉 개의 본문에서 우리는 이 기독교 은혜 트리오(trio of Christian graces)를 확인할 수 있다(고전 13:13; 갈 5:5-6; 엡 4:2-5; 골 1:4-5; 살전 1:3; 5:8; 히 6:10-12; 10:22-24; 벧전 1:21-22).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같은 대답을 반복해서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제일
고린도전서 13:13은 이 트리오를 강조하는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의 이 주장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왜 사랑이 세 가지 은혜 중 “제일”일까? 결국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엡 2:8), 그리스도와 그의 약속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신자로서 계속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할 때 소망은 우리를 기쁨으로 채우고,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롬 12:12). 그러나 바울은 이 거룩한 세 가지 중에서도 사랑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왜 사랑이 제일일까?
고린도전서 13:13을 세 가지 문맥에서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에 답해 보자. 우리는 먼저 이 바울 서신서 전체를 큰 맥락으로 하여 시작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고린도전서 12-14장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접 맥락인 고린도전서 13:8-13에 집중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고, 또한 우리 가정,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 이웃이 사랑으로 가득 차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이름을 세상에 널리 전하게 되기를 바란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을 낳는다
바울 서신들에서 우리는 믿음과 소망이 사랑을 낳는다고 말하는 여러 구절을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5:6은 믿음과 사랑을 이렇게 연결 짓는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믿음은 항상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하여 일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지내도 된다? 아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기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믿음을 통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한다. 골로새서 1:4-5에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바울은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소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동료 신자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임을 알았고, 이러한 소망으로 인해 시간과 소유물은 물론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정도로 동료 신자를 섬길 수 있었다.
믿음과 소망은, 어떤 의미에서,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더 큰 목적이 빠진 믿음과 소망은 불완전하다. 믿음과 소망은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 넘쳐나게 한다.
사랑은 교회를 세운다
이제 우리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바울의 말이 들어 있는 고린도전서의 문맥으로 초점을 좁힐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바울은 신령한 은사들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은사와 우리가 “기적의 은사”라고 부르는 은사의 사용과 같은 문제를 정리해 나가는 바울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그 모든 것이 다 교회를 세우는 데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함께 모일 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누구나 이 목적을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나머지 지체들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신령한 은사를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영광을 차지하고 교회의 덕은 세우지 않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그런 은사들이 넘쳐나는 교회는 원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열매 맺지 않는 종교 활동과 교회를 북돋우는 섬김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이 서신의 앞 부분에서 바울은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고 썼다. 고린도전서 12-14장의 문맥에서, 사랑에 관한 바울의 유명한 말이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와 “소리 나는 징이나 울리는 꽹과리”(고전 13:1)에 불과한 은사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지식을 초월하는”(엡 3:19)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세워주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망으로도 안 된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은 영원토록 제일이다
사랑이 기독교 은혜 트리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유는 고린도전서 13장 후반부에 나온다. 13:8-13에서 바울은 예언과 방언과 지식 같은 신령한 은사들은 지금 이 세상에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바울은 13절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은혜는 영원한 것이기에 은사들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이며,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계속 고대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를 통해 흐르는 사랑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요일 4:16).
1738년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천국은 사랑의 세계”(Heaven Is a World of Love)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그는 천국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천국은 사랑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태양이 빛의 샘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의 샘이십니다. 그러므로 맑은 날 반구 중앙에 위치한 태양이 세상을 빛으로 채우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는 사랑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십니다”(Works, 8:369).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듯, 하늘에서는 사랑이 모두의 마음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8:373).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영원을 보낼 소망을 가지고 기뻐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사랑으로 가득 찰수록, 우리는 현재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반영하고, 교회는 천국의 전초기지로서의 소명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의 삶과 교회는 하나님과 서로를 사랑할 때 천국의 달콤한 향기를 퍼뜨린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