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장 13-14절

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현대어 성경

13 깨달은 이의 입에는 슬기가 배어 있으나, 미련한 자의 등에는 채찍만 기다리고 있다.

14 슬기로운 사람은 깨달음을 소중히 간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쓸데없이 떠들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지 황천길로 떨어진다.

 

현대어 성경의 번역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무섭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와 ‘지식’은 말씀을 의미한다. 혹은 말씀으로 말미암은 건강한 생각과 깨달음을 의미한다. 

지혜 없는 자는 미련한 자이고 어리석은 자이다. 즉, 주님의 말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곧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정도로 글을 마치면 은혜가 되는가. 아마 절대로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지극히 기독교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긍적적인 말씀들, 즉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혹은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따위의 말씀들에는 ‘당연한 말씀’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리고 거기까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너무 잘 아는 말씀이다. 거기까지다. “그러니 어쩌라고?”하는 식의 배짱이 우리들에게는 다 있다. 

부정적인 말씀들 혹은 명령의 말씀들, 즉 “미련한 자의 등에는 채찍만 기다리고 있다” 또는 “어리석은 사람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또는 “좁은 길로 걸어가라” 따위의 말씀들에는 두려움이 없다. 겁이 없다. 왜? 현실적인 채찍이 없으며 멸망을 모르기 때문이다. 

채찍을 못 느끼며 멸망이 당장 없다 하여 그 미련한 삶에 평안이 있을까? 순간을 잘 넘기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할 수 있어도 계속해서 거짓을 만들어야 하기에 불안하고 초조한 삶일 뿐이다. 반대로 깨달음을 간직하고 있는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얼마나 영적 중압감이 클까?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말씀의 깨달음에는 평안과 의와 희락이 보장되어 있음이 포함된다. 

우리의 일상 모든 것은 반복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를 반복의 역사로 해석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일리가 있고 충분히 맞는 말이다.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주님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 주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 복 주셨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삶을 사는 자들이다. 반복되는 삶에서 즐길 것은 즐기지만, 아닌 것에 대해서는 역류할 줄 아는 자들이다. 그 힘을 말씀에서 찾기를 원하는 공동체가 바로 주님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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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눈 앞에 당장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그냥 살기도 했었고
    때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잖아 하며
    자신을 속이며 합리화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는 늘 불안하기만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삶이 정말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겠어요
    말씀에서 위로받고, 말씀속에서 훈계를 받고,
    나를 말씀에 맞춰가고 깎여가고 다듬어지는 삶속에서의 저의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고 희락이 있습니다.

    1.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많이 부지런하시네요 뽀랄라님.
      뽀랄라님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고 많은 도전이 돼요.
      하루의 말씀을 읽은 후에 금세 다른 할 일을 찾아 눈을 돌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며 반성하고
      꾸준히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귀하게 느껴져요.
      하나님 사랑하는 그마음 변치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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