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글 (로니 말틴) 나눕니다. 

 

당신은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우리는 각자의 태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약간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열정적으로 다가가 기꺼이 초대자를 자처하는 성도, 아니면 경계심 혹은 무관심으로 그들의 눈을 피하는 성도. 둘 중의 어느 경우일지라도, 고민해야 하는 동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명백한 외부인’으로 대한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거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내 제안은 단순하다. 우리는 복음의 전파자로서 환대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그들에게 환대를 베풂으로써 복음이 전파될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복음적 환대

많은 경우,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 ‘내가 여기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교회에서 복음적 환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간단한 방식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친절하라

진정한 따뜻함과 친절을 베푸는 크리스천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외부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환대의 영역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나는 교회가 친절을 어떻게 베풀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는 환영을 담당하는 집사가 따로 있다. 그녀는 교인들에게 부드럽게 다가서는 방법을 가르친다. 친절은 이론적으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과 환대를 베풂으로써 시작한다.

2. 도움이 되라

낯선 자로서 교회에 처음 들어오는 일은 긴장되고 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교회의 규모와는 전혀 상관없이, 두렵고 압도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그들이 질문하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 먼저 다가가서 묻고 대답하는 일이다. 찾기 어려운 장소에서 성도 간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면,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와 모임 장소를 알려주고, 질문이 있으면 기꺼이 대답해 주겠다고 말하라. 이러한 소소한 친절이 교회를 처음 찾은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또한 그들을 교회의 중앙으로 나아오도록 이끈다.

친절과 도움을 바탕으로 새신자들에게 복음적 환대를 잘 베푼다면, 이는 그들에게 복음으로의 초대장을 건네는 것과 같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초대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건네는 3 가지 방법을 배울 수 있다.

1. 교회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

“외부인들에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 4:5).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사람들이 찾아오면 예배 시작이나 마지막, 혹은 중간에라도 그들에게 존중과 환영을 표하라. 이러한 소통은 다양한 신앙과 관점 및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교회의 한 좌석을 차지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또한 목회자가 비그리스도인을 잃은 양이라고 표현할 때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배타성을 내려놓고 우호적으로 다가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향기를 전할 수 있다. 

2. 내부자들만의 언어를 줄이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라”(골 4:6). 

그리스도의 은혜를 잘 설명하는 용어인 속죄, 칭의, 성화와 같은 단어들을 삼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부자들만 사용하는 은밀한 언어를 피하라는 말이다. 그러한 언어는 당신의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내부자들만의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들릴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서 그들에게 배타적인 느낌을 줄 필요가 있는가?

사역과 행사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축약어나 과장되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 주일 예배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3. 어리석은 자를 품으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이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그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굳이 메시지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복음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강렬해야 하며, 이를 전하는 사람은 선포하는 복음의 본질을 두려움 없이 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을 품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죄 문제를 다루지 않는 변형된 복음은 죄로 인해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교회를 찾은 외부인들에게 환영받는 느낌을 주는 손쉬운 속임수나 일련의 술책은 없다. 성도들이 복음적 환대를 겸손히 실천할 때,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성령의 일하심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피로 세우신 공동체가 아직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돌아올 집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Similar Posts

  • 5월 13일 목요일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의 악한 죄를 단번에 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적 예배의 삶이다. 이 기쁨은 세상적 기쁨이 아니기에 애통해 하는 가운데 반복되는 기쁨을 맛본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위로이다.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은 것이 우리의 방종의 자유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복음은…

  • 9월 21일 토요일

    여호수아 11장 1-23절 1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왕과 악삽 왕과 2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4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 쳤더라 6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 2025년 9월 4일 목요일 / 창세기 8장 20-22절

    9월 4일 목요일 / 창세기 8장 20-22절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생명의 회복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은 인간과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예배와 순종으로 나아갈 때, 참된 평강과 은혜가 임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일상의 삶 속에서 감사와 순종을 드리는 작은 제단을…

  • 2월 26일 금요일

      신명기 7장 5절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가장 인간적임을 나타내는 인간의 내면의 모습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의 대상은 항상 초인간적이며 인간 이상의 힘이 있다. 그렇기에 무서워하는 것이다. 친밀함이란 전혀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상황에 따라 두려워한다. 인간 본연의 실존적 모습이다.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고 하는…

  • 2월 8일 화요일

      죄에 대한 글 (라이언 맥그로) 나눕니다. 귀한 성경 공부 시간 되길 바랍니다.    죄의 범위와 전적 부패 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울은 구약의 여러 본문을 결합해서 우리 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 9월 2일 금요일

      누가복음 21장 1-4절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