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글 나눕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는 책이 성경이다. 더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까지 알려준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성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에 관한 지침까지 성경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성경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게 있다. 어떻게 나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드러낼지에 관해서이다. 성경에 인스타그램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성경에 담긴 이 지침은 소셜 미디어에서 만들고 소비하는 콘텐츠에, 그리고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까지 다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 땅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다(마 5:13-16). 그러나 동시에 맛을 잃은 소금은 무익하고, 빛은 밝혀야 하는 것이지 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과 상호 작용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이 가진 능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스도인의 짠맛을 보존해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다. 빌립보서 4:8에 있는 바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 구절은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서 무엇을 소비하는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게시하고 또 다른 게시물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준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니다. 다른 사람을 잘 사랑하는 방법은 빌립보서 4:8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가득하다(마 5:43-48, 롬 13:8-10, 요 13:34). 심지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게, 로마서 13:8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남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바로 빌립보서 4:8에 담긴 많은 교훈의 중추를 이룬다. 소셜 미디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성경의 명령은 바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오로지 진실한 사실들만 공유하고 싶을 것이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사랑스럽고 좋은 것들만 게시하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서 정의를 옹호하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할 만한 일을 했을 때 힘을 다해 격려하고 싶을 것이다. 

사랑은 또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하도록 도움을 준다. 사랑이 반대하는 사실까지 동의하도록 하는 건 아니지만, 화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단지 하나의 아이디(ID)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임을 알기에, 우리는 사랑의 방식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진실하고 정의롭기 위해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명령한다(엡 6:14). 거짓과 반쪽짜리 진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는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명령이다. 소셜 미디어도 이런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셜 미디어에서 만나는 진실 대 거짓의 비율은 더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에 순응해서 최대한 팔로워가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는 사람으로 넘친다. 그런 이들에게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게 주된 관심사이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게시물을 공유할 때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 

화면에 뜨는 게시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무조건 거짓이라고 가정하고 폭언을 퍼붓기 전에 먼저 조사하라. 당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어떤 내용을 공유하기 전에도 먼저 사실 여부부터 확인하라. 당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더 멀리 밀어낼 뿐이다. 

진리를 전파하는 것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죄가 옹호되고 선이 거슬리는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필요는 없지만,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엡 4:15). 여기에는 죄를 죄라고 외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을 집어삼키는 죄를 조용히 바라만 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죄를 죄라고 비난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스럽고 훌륭하고 순수함을 위해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망가졌다. 따라서 수많은 진실한 것들이 더 이상 사랑스럽거나 훌륭하지 않다. 어둠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지만, 화면에 얼마나 많은 것이 뜨도록 허용할지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야 결국에 겉으로 드러내야 하겠지만, 누구나 다 그 전에 은밀하게 처리해야 하는, 자신만의 어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우리는 나와는 다른 타인의 한계에도 민감해야 한다(고린도전서 8장).

어쩌면 당신은 섭식 장애, 인신매매, 자살 같은 어려운 주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열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주제지만, 이런 이야기가 특정 사람들에게는 괴로움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경고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게시함으로 연약한 이를 존중할 수 있다. 어떤 계정이 지속하여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라면 계정을 언팔로우해야 하지만, 내가 올리는 게시물을 보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칭찬할 만하다면, 그게 무엇이든

마지막으로,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진정으로 좋은 일을 했을 때, 그들을 세워주는 것이 포함된다. 부정적인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악에 맞서는 친구가 있는가? 그의 곁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삶에서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친구가 있는가? 격려하라. 믿음을 나누는 데 전념하는 계정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는가? 좋아요, 댓글, 공유를 통해 지원하라. 소셜 미디어에서 좋은 것을 더 많이 보고 싶다면, 선한 것을 열심히 장려해야 한다.

때때로 성경이 우리가 직면한 모든 현대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온라인 성경에 검색어 “소셜 미디어”나 “인스타그램”을 치면 결과는 제로이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하며 소셜 미디어를 포함하여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을 적용할 수 있다. 이 사실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성경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얼마나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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