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화요일 /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기독교 믿음의 가장 중요한 생각 중 하나는, 사람들이 죄로 인해 하나님을 화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생각은, 이 화해(곧 구원)는 오직 한 분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앞으로 살펴보면서, 먼저 ‘중재자’의 역할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중재자는 서로 갈등하는 두 편 사이에서 평화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 삶에서도 중재자를 자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다툰 두 친구 사이를 화해시키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노사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가 중재하기도 합니다.

둘째, 중재자는 두 편의 입장을 잘 살펴서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중재자는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받고,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되도록 노력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자는 보통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선택됩니다.
하지만 범죄가 일어났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이것이 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중재자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어, 거룩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형벌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창세기 3장; 로마서 5장 12–21절).
사람은 이 무한한 형벌의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빚은 사람이 졌으니 사람이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중재자는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생애와 죽음은 하나님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그 빚을 갚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사랑으로,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어 주셔서 우리가 진 빚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중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정말로 이루실 수 있는 유일한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중재자를 주신 것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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