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에 관한 귀한 글을 나눕니다. 조금 길지만 꼭 숙독하셔서 큰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겸손에 관하여… / 데이빗 메티스

 

1. 당신 자신에 대해서 덜 생각하라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길 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겸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그냥 마음먹는다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겸손을 추구하는 첫 번째 과정은 우리를 참으로 겸손하게 만드는데, 겸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과정에 참여해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로마서 12장 3절은 겸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 중 하나며,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겸손케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를 들여다 보게 한다.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C.S. 루이스(C.S. Lewis)는 겸손에 대해 기념비적인 말을 남겼는데, “겸손이란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단지 당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과장된 생각에 빠져있지 말고, 대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이 구절을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비록 바울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말라고 했지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 이 세상의 패턴을 관찰하라

첫 번째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과장된 사고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 세상의 기준을 따를 때,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태초부터 그랬다. 인류의 첫 번째 죄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에 발생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마음 속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반란이다. 이런 죄가 뿌리를 내려 자라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퍼지기 시작해 세상에서 열매를 맺은 결과, 어떻게든 자기 사랑에 있어서만은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자 하는 인간들로 이 세상은 채워졌다.

자기 사랑이라는 면에서 우리 선조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지금 우리의 손에는 우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있다.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고 또 온 세상이 내 컴퓨터 스크린 위에 있다. 우리가 조금만 균형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 또한 자화자찬으로 치솟았다가 조만간 자기 연민 속으로 추락할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쉬지 않고 가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겸손을 갖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는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처럼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는 겸손이 마치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라, 자아도취에 빠진 이 세상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3. 가장 낮은 곳을 선택하기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교만)에 빠진 것을 본 예수님은 비유를 들었다. “상석”에 앉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0–11).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하다고 생각하길 원한다. 많은 양들 중의 하나로서 낮고 평범할 뿐이지 결코 랍비나 선생 또는 스승처럼 특별한 존재(마 23:8–12)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들보다 나을 것 없지만, 평범하기에 행복하고 더 나아가 기쁘게 종으로서 섬기는 존재라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누구나 다 작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가 되라고까지 했다(마 18:3). 그런 사람들은 굳이 강한 척할 필요도 없고, 또 다 가졌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다. 그들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스스로의 비천함을 인정할 수 있다. 척하지 않기에 그들은 겸손하다. 

4. 자신에 대해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말하라

자,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추구하는 자화자찬과 자기연민의 패턴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하는 것이고 또 지나친 것이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하는 말에 달려있다.

하루를 살면서 알게 모르게 나 자신에 대해 하는 생각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표현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당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당신에 대한 어떤 배경을 제시하는가? 당신 자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온라인 소개란에 써놓았는가? 굳이 SNS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얼마나 자주 겸손을 가장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가? 대중의 인정과 갈채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부러 당신 자신에 대해서 안 좋게 써놓고 누군가가 나서서 당신을 높여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고 특별석을 향해서 지금 나아가고 있는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말로 나오기 마련이다. 말은 나의 내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조금씩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형성하기도 한다. 

5. 작아도 만족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과소평가”는 겸손과 함께 간다. 

화술의 일종인 과소평가는 오랫동안 “타피노시스(tapinosis)”라는 기술적 제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어 겸손(tapeinosis)에 어원을 두고 있다. 특정 현상(특히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나 사람들의 기대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며 최상의 (현대에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우리의 풍요함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자질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과소평가 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도 겸손이다. 

그리스도가 안전함의 근원이기에, 우리는 실제 또는 온라인 대화에서 내 삶에 대해서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서 더 극적인 삶을 누리며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제보다 더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미묘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부요함을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과소평가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능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며, 그의 가치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해서 과대 포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얼마든지 과소평가해도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예수님의 위대함에 점점 더 감동받을수록, 나 자신의 대단함에 감동받는 일은 점점 더 사라진다.

Similar Posts

  • 1월 12일 목요일

      귀한 글 나눕니다.    우리 마음을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까?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도우시는가?  바울의 기도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 4월5일 주일

    마가복음 14장 22-31절 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 1월 30일 주일

      누가복음 11장 9-10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또 축복을 주시는 수단으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 7월 29일 수요일 (욥기 9-12장)

      1. 욥은 자신의 고난의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외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원죄성)을 인정하며 한탄합니다. 즉, 자신이 노력한 모든 의로움이 아무리 철저할지라도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연약한 심성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간략한 표현이지만 그의 인간적인 절규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큰 일을 하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인간이…

  • 10월 24일 화요일 (왕하5 딤전2 단9 시117,118)

    열왕기하 5장 1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 9월 19일

    로마서 9장 19-29절 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One Comment

  1. 과소평가와 자아도취 사이에서, 이렇게나 어려운 겸손을 어떻게 모두 이해하고 또 지켜낼 수 있을지 참 어려운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알고자 할 때 겸손으로 돌이키는데 도움이 될 것같은 구절을 발견하고 위안을 삼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를 바라보아야 한다. ” (이 세상의 패턴을 관찰하라 중에서)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