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9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열매’라는 단어를 설교 중에 많이 사용하셨다. 아마도 예수님 당시에 나무의 열매가 주 음식 중에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서 ‘열매’라는 친숙한 말을 은유로 많이 사용하셨다. 요즘이야 열매 하면 과일로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먹을 것 중에 중요한 음식이었다(물론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이해가 조금은 다르겠지만). 그러니 살아가는 삶에 필수적인 음식인 셈이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며 설교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를 증거하기도 한다.
따라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지 모른다. 과연 이 중요한 열매가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열매를 맺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반드시 숙지해야 할 필수적인 문제이다.
먼저 분명한 것은 ‘선지자의 노릇’ 혹은 ‘귀신을 내쫓는 일’ 그리고 ‘권능을 행하는 일’ 따위의 것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열매는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며 또는 영의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소위, 보이는 사탄의 세력을 정죄하고 싸우며 그리고 마치 기적과도 같은 초월적인 신비의 일을 이루는 따위의… 앞서 가는 교회의 일이며 리더들의 탁월한 능력이다. 게다가 ‘주의 이름’을 내세우며 한다. 얼마나 화려하고 멋 있는 기독교적인 모습인가.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이것들을 가리키며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 하셨으며 더군다나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말하시는 ‘열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너무 두려운 이야기이지만 반면에 너무 간단한 이야기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열매’는 주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좁은문과 협착한 길로 가는 것이다. ‘문’과 ‘길’ 그리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시니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요 예수님 성품을 갖는 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이다.
행함은 성품이기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갈 때가지 끝나지 않는다.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며, 산 것 같아도 다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여정이요 거룩은 한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며 감사는 찾아야 누리는 것이고 결국 고난의 삶이 ‘열매’이다.
불에 던져진다는 말에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을 갖고 자신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