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주일 입니다. 기쁨에 관한 글 (메튜 스메설스트) 나눕니다.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순종이 항상 기쁜 건 아니다. 올바른 순종은 기쁨과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순종하는 것을 보고 싶다.

성경 전체에 기뻐하라는 명령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기쁨은 행동이 아니라 감정이 아닌가? 느낌을 어떻게 명령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나님과 관련해서 우리가 자주 생각하지 않는 문제를 한번 다뤄보자.

창조의 기쁨으로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행복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행복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세상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그 기쁨은 있었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 세 위격이 한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교제하며 신성한 기쁨을 나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왜 우주를 창조했을까? 뭔가가 부족해서 보충할 피조물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다. 천지 창조는 기쁨의 폭발이고 넘쳐남이었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게 아니었다. 이 점을 잠시 생각해보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놀라운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당신과 나도 하나님의 넘치는 기쁨의 결과이다. 삼위일체 세 위격의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피조물과 무한한 기쁨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신학 정보가 성경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쓰인 책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복한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

부수적인 게 아니다

창세기 1-2장의 모습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시간은 짧다. 지금 우리는 어둠과 죄가 만연한, 그리고 죽음으로 가득한 창세기 3장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면 계속 살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이 왜 그렇게 긴지 궁금한 적이 있는가?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이 오래 참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오래 참음에 대한 긴 이야기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렇게 오래 참으실까? 그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계획된 일을 신중하게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들과 자신의 끝없는 기쁨을 나누는 바로 그 계획이다(계 7:9).

성경에 따르면 기쁨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부수적인 것이 아니며, 힘든 일을 이겨낸 성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도 아니다. 기쁨은 인내하는 것이다. 기쁨은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기쁨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기쁨은 인생의 거친 물결이 우리를 위협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내가 탄 배의 복원력이고, 폭풍 속에서 붙잡는 닻이며,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이다.

기쁨은 성경 속의 사소한 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핵심이다. 우리의 작은 이야기도 그 구원을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시 살펴보자.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눅 2:10).

죽음이 무엇인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교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2 12).

성경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예 15:16).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속의 진짜 기쁨이 요란한 잔치와 관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문화가 주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기쁨은 내 자신이 기준이 되어 나의 말을 듣는 것에 있지 않다. 주의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진짜 기쁨이 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할 때”(시 1:2),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그리고 말씀 속에서 퍼내고 퍼내도 모자라지 않는 것을 찾을 때 진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신약성경은 똑같은 주제를 좀 더 발전시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여기 그가 아버지에게 기도한 내용이 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요한의 말도 살펴보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 1:4).

계속해서 구절 속에 나오는 후렴구를 알아차리겠는가? 이것, 이것, 이것 – 바로 말씀이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또는 요한의 글을 통해서 나오지만, 이 모두는 다 하나님의 호흡이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기쁨과 그 생명이 말씀 속에 들어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의 목적, 그러니까 성경의 목적은 당신의 마음에 기쁨의 홍수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기쁨이 말라갈 때

성경적인 기쁨은 겉모습으로 활기차게 보이고,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준이 아니라고 이미 말했다. 지옥은 그런 사람으로 가득하다. 진정한 기쁨은 훨씬 더 좋고, 훨씬 더 대단한 것이다.

나는 성경을 읽는 기쁨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진다. 훈련이 필요하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성경을 읽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기쁨이 된다. 그것이 훈련의 본질이다.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또 단번에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기쁨은 우리가 왕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그 날까지, 그래서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해질 그 날까지 멈추지 않고 조금씩 더 커지고 있다(사 33:17; 고전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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