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깨달음을 주는 글 (윌리암 로스) 나눕니다.

 

지붕에서 내려온 중풍병자를 고친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우리는 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사랑이나, “무엇이 더 쉬운가”라는 예수님의 질문 혹은 병이 나은 기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의 모습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라기보다는 중풍병자와 비슷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풍병자와 비슷한 이유 네 가지와 그에 대한 예수님의 치료법을 보자.
1. 예수님 주위가 “복잡하면” 우리는 굳이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에 아침은 너무 바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거나 상담하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가정 예배를 인도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장벽이 놓여있을 때 우리는 굳이 예수님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쉽고 편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묵상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이나 바쁜 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육신이 주는 게으름에서 벗어나 성령님으로 채우고 동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갈 5:16-18;롬 7:6).
2. 예수님과 함께한 최고의 순간들은 많은 경우 친구 때문이다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어떤 것도 친구들을 막을 수 없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지붕까지 수리했을 것이다. “일단 예수님께로 내려보내자. 지붕은 나중에 처리하자.” 그들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죄성으로 가득한 나의 생활을 본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쉬고 있을 때 교회에 나오도록 격려하거나 힘든 일 앞에서 두려워하는 내게 용기를 주는 친구들도 있다.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믿음이 굳건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형제자매는 우리가 지역 교회를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때로 우리는 친구들과 언쟁을 하거나 다투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있는 형제를 우리에게 주셨다(갈 6:2). 내가 바로 친구들이 들어야 할 짐일 경우도 있다. 그들이 나를 들고 예수님께로 나가기도 한다.
3. 친구들이 나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갈 때 불평한다
중풍병자는 아마도 당황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심각한 죄를 지었거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었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요 9:1-3).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시 146:8; 레 19:14; 예 30:17을 보라)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육체적 장애는 말할 것도 없고 중풍병자도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거부 그리고 종교적인 경멸까지 겪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절망에 빠져서 혼자 있기를 더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고집이 센 친구들이 우리를 끌고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화를 낸다,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면 우리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나와 함께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이게 가치 있는 시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친구들이 나를 예수님께 데리고 갈 때 우리는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낸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은 돌처럼 딱딱해지고, 새롭게 해주신 마음과는 정반대의 상태가 된다(겔 36:2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모습의 가운데에 멈춰 서 있다. 우리의 약함 때문에 느끼는 수치심과 분노는 죄로 이끄는 덫과 같다. 예수님은 내면의 가장 깊은 어두움 속에서 우리를 만나 상한 마음을 고쳐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킨다(골 3:8-10; 시 51:8).
4. 우리는 아직도 상(matt)을 들고 다니고 있다
중풍병자가 용서받고 병의 고침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상을 들고 가라고 했다(막 2:11). 아마도 예수님은 상을 들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다 “상”을 들고 다닌다. 우리의 회심과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상처, 우리가 견딘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간증의 의미로 말이다. 이런 “상”은 우리 구주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는 구주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상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할 때도 많다. 우리는 남이 보지 않을 때는 그 상 위에 다시 누울 생각까지 한다. 어떤 경우든 좋은 소식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치고 두려워할 때 우리의 짐을 대신 들어주신다(마 11:28-29). 우리의 약점을 강력한 능력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약점까지도 돌봐 주실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벗어버릴 수 있다(시 55:22; 빌4:5-6). 우리는 구주를 위해 봉사하는 것 외에는 어떤 짐도 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마 11:29-30; 롬 6:22).
구원받은 중풍병자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 이야기는 그냥 일반적인 교훈이 아니다. 그는 심각하게 부서진 사람이었지만 창조주로부터 용서받았고, 치료받았다. 예수님은 자신을 높일 목적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그런 기회를 “사용하는”분이 아니다. 그는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는 온 세상의 모든 짐을 지고도 우리의 죽어버린 부분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인내하고 기다린다.
우리가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중풍병자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피는 것을 기뻐하신다. 우리를 구속하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집으로 보내신다. 그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비된 부분이 그분 안에서 치유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고후 12:9).
헌신적인 사람들, 파파라치, 회의론자들로 가득하고, 덥고 냄새나는 좁은 방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은 오늘도 기쁨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온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우리 속에서 메말라버린 부분을 되살리기 위해 참고 기다린다. 먼지와 지붕 파편이 아래로 떨어지고, 초대받지 않은 우리가 지붕을 통해 절뚝거리며 나아가도 그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한다.
그에게로 가자. 그가 당신을 그의 능력으로 채우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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