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기쁨에 대한 글 (데이빗 매시스) 나눕니다. 

 

축소해서 말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신 과대 포장과 화려한 수식이 넘쳐난다. 대중적인 의사 소통은 하나의 장대한 사운드 비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파티, 이벤트, 보도자료, 경연 대회, 정치 집회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것은 과거보다 더 크고 화려해야만 한다. 

과대 광고와 과장, 화려함과 허세가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온라인 프로필을 꾸미는 데 가장 그럴듯한 사진을 선택하고, 가장 내세울만한 성과를 강조하며,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하는 데이터를 선택해 타임라인을 신중하게 채워간다. 지금 하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한마디로 말해서, 과잉된 약속과 형편없는 결과라는 시대의 전염병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최소한 대중의 눈으로 볼 때, 단순한 진리를 겸손하게 전달하는 게시물은 거의 찾기 힘들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 기독교인도 이런 사회적 압박에 희생되고 있다. 이번 주일 예배, 이번 컨퍼런스, 이번 연구, 이번에 나오는 책 등등을 알리는 메시지는 언제나 지난번 것 보다 훨씬 더 멋지다고 강조한다. 이런 경향은 교회 개척이나 새로 시작하는 사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집단적 불안감과 미숙함은 실제보다 더 좋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증을 불러 일으키고 그러다 보면 사실보다 더 과장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개척하는 교회든지 또는 사역 기관이든지 더 지속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취약함과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을 위장하고 있는 정교한 포장에 불과하다. 

이런 미친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은 어떨까?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 한번 겸손해지면 어떨까?

당신 자신에 대해서 덜 생각하라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길 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겸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그냥 마음먹는다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겸손을 추구하는 첫 번째 과정은 우리를 참으로 겸손하게 만드는데, 겸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과정에 참여해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로마서 12장 3절은 겸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 중 하나며,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겸손케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를 들여다 보게 한다.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C.S. 루이스(C.S. Lewis)는 겸손에 대해 기념비적인 말을 남겼는데, “겸손이란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단지 당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과장된 생각에 빠져있지 말고, 대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이 구절을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비록 바울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말라고 했지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세상의 패턴을 관찰하라

첫 번째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과장된 사고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 세상의 기준을 따를 때,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태초부터 그랬다. 인류의 첫 번째 죄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에 발생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마음 속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반란이다. 이런 죄가 뿌리를 내려 자라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퍼지기 시작해 세상에서 열매를 맺은 결과, 어떻게든 자기 사랑에 있어서만은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자 하는 인간들로 이 세상은 채워졌다.

자기 사랑이라는 면에서 우리 선조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지금 우리의 손에는 우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있다.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고 또 온 세상이 내 컴퓨터 스크린 위에 있다. 우리가 조금만 균형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 또한 자화자찬으로 치솟았다가 조만간 자기 연민 속으로 추락할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쉬지 않고 가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겸손을 갖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는 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처럼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는 겸손이 마치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라, 자아도취에 빠진 이 세상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을 선택하기

결혼식에 초대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교만)에 빠진 것을 본 예수님은 비유를 들었다. “상석”에 앉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0–11).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하다고 생각하길 원한다. 많은 양들 중의 하나로서 낮고 평범할 뿐이지 결코 랍비나 선생 또는 스승처럼 특별한 존재(마 23:8–12)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이들보다 나을 것 없지만, 평범하기에 행복하고 더 나아가 기쁘게 종으로서 섬기는 존재라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누구나 다 작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가 되라고까지 했다(마 18:3). 그런 사람들은 굳이 강한 척할 필요도 없고, 또 다 가졌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다. 그들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스스로의 비천함을 인정할 수 있다. 척하지 않기에 그들은 겸손하다. 

자신에 대해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말하라

자,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추구하는 자화자찬과 자기연민의 패턴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하는 것이고 또 지나친 것이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하는 말에 달려있다.

하루를 살면서 알게 모르게 나 자신에 대해 하는 생각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표현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당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당신에 대한 어떤 배경을 제시하는가? 당신 자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온라인 소개란에 써놓았는가? 굳이 SNS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얼마나 자주 겸손을 가장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가? 대중의 인정과 갈채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부러 당신 자신에 대해서 안 좋게 써놓고 누군가가 나서서 당신을 높여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고 특별석을 향해서 지금 나아가고 있는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말로 나오기 마련이다. 말은 나의 내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조금씩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형성하기도 한다. 

작아도 만족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과소평가”는 겸손과 함께 간다. 

화술의 일종인 과소평가는 오랫동안 “타피노시스(tapinosis)”라는 기술적 제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어 겸손(tapeinosis)에 어원을 두고 있다. 특정 현상(특히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나 사람들의 기대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며 최상의 (현대에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우리의 풍요함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자질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과소평가 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도 겸손이다. 

그리스도가 안전함의 근원이기에, 우리는 실제 또는 온라인 대화에서 내 삶에 대해서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서 더 극적인 삶을 누리며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제보다 더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미묘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부요함을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과소평가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능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며, 그의 가치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해서 과대 포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얼마든지 과소평가해도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예수님의 위대함에 점점 더 감동받을수록, 나 자신의 대단함에 감동받는 일은 점점 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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