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장 11-22절

11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와 무게는 일생을 묵상해도 다함이 없다. 때로는 은혜에 대한 감사로, 때로는 지혜에 대한 놀라움으로, 때로는 주님의 십자가가 이룬 웅장한 역사에 대한 경이로,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할 집자가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과 죽음을 감사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기업의 소망을 품고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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