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주일 입니다. 주일 설교를 듣는 영적 태도에 도전이 되는 글 (크리스토퍼 애쉬) 나눕니다. 

 

어떻게 설교를 듣는가? 여러분은 이것이 어리석은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떻게 TV를 시청하는가에 대해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리모컨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설교를 듣는 것은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설교를 듣는 것은 수동적인 활동으로 나에게 설교되는 것이지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듣는다면 더욱 많이 받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듣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설교를 듣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듣고 있는지 주의하여 삼가도록 하자. 여기에 일곱 가지 조언이 있다.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대하라

우리가 사람의 목소리에 의해 생기는 음파를 듣는 것이지만, 설교자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의 권위있는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교회 내의 성경 강론에 대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라고 기록하였다(벧전 4:11). 만일 누군가 신실한 설교를 듣는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들어야한다.

주중에 다음 주일의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라. 당신 자신과 그리고 교회에서 함께 예배할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가능한 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롭고 주의 깊은 자세로 설교 듣기에 임하라. 당신의 생각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을 기대하라. “주여, 제게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2. 하나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설교할 때, 바울은 그에게 경고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설교자를 원한다고 하였다(딤후 4:3). 본성적으로 우리 모두는 그것을 원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낫게 느끼게 하고 우리의 자존감을 부추기며 이미 존재하는 편견을 강화하는 설교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날마다 주마다 죄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의뢰하도록 명하신다. “모든 도덕적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명하신다(약 1:21). 우리는 말씀 아래 겸손히 앉아야 한다. 심판하는 자세로 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지 우린 아니다. 우리의 견해와 신념과 마음과 삶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3. 설교자가 본문이 말씀하는 것을 말하는지 확인하라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강해 설교를 듣는가에 관한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에 넣어두신 의미를 성경으로부터 찾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는 강해, 곧 거기 있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주입하는” 설교인데, 설교자가 본문에 어떤 뜻을 주입하는 것이다. 물론 한 단락을 해설하는 설교가 있고 한 단락 이상의 더 많은 구절들을 가지고 해설하는 설교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설교자가 그 본문이 말씀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 확인하기에 더 쉽다는 장점이 있다.

설교자의 권위는 목사든 사역자든 그 누구든지 그의 직위나 그 사람의 능력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위임받은 권위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그가 말할 때 그는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에게 권위가 없다. 한 친구가 전에 내게 말했다. 그 목사가 설교할 때 그는 스스로 성경을 펴서 “이것이 어디에 나오지?”라고 질문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질문이다. 만약 설교자가 성경 본문에서 그것을 얻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고개 숙이고 회개하며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4.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라

요즘은 온라인상에서 설교를 내려 받아 자기가 원하신 시간에 편한대로 듣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최선은 아니다. 하나님의 표준적인 방법은 그분의 백성이 모여서(‘교회’의 뜻이 ‘모임’이다) 함께 그분의 말씀 아래 앉아 듣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은 단지 ‘나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듣는다. 그래서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내가 그 설교를 들었고 여러분도 내가 그것을 들은 것을 안다. 이제 여러분도 내가 들은 것을 알기에, 내가 그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할 것을 여러분들이 기대하고, 나도 여러분이 그러리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서로 도우며 경건하게 살도록 서로 격려한다(히 10:24-25).

5. 매 주마다 그곳에 있어라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헌신하지 않아도 괜찮은 문화적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이리 저리 떠다니며 구경꾼처럼 뒷좌석 끝자락에 앉아있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약의 가족과 함께 지속적으로 모이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쉽게 한두 주일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우리를 고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그분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려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인격을 만드시고 형성해 나가신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선포되시는 설교를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베드로가 말씀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이미 알고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라고 한다(벧전 1:12). 교회에 출석한 주일 혹은 출석하지 않은 주일에 대해 계속 출석 체크를 해보라. 당신이 얼마나 자주 참석하지 않는지 놀랄 수도 있다. 그곳에 규칙적으로 있기를 다짐하라. 당신 자신의 유익과 주위 사람들의 유익 모두를 위하여 그리하라.

6.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행하라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하는 것을 행하라”(약 1:22)라고 기록한다. 설교의 목적은 우리가 다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 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인내로 경건한 인격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눅 8:15). 우리는 대접을 받거나 지적인 정보로 우리의 뇌 세포들을 자극하거나 교묘한 웅변술에 의해 우리 감정이 동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에 나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듣고 예배하고 순종하기 위해 나아오는 것이다.

주일 설교 후에, 설교 말씀을 순종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생각하라. 그것을 적어두라.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 어떤 것은 새로 시작해야 하고 어떤 것은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 수 있다. 대부분은 마음의 태도와 소원에 관한 것이다. 주일마다 기록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때때로 과거 기록을 살펴보고 당신의 진보를 돌아보라.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그분의 말씀으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 스스로 놀랄 수도 있고 격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7. 성경이 오늘 말씀하는 것을 행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시편 95편에서 그렇게 말씀한다. 히브리서 기자도 그것을 인용하여 그렇게 말씀한다(히 3:15). 우리의 들음에는 긴급함이 있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즐거워하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정확히 기록되게 하신 것을 기뻐하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좋은 소식을 인하여 기뻐하라. 당신이 신자라면 당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가족과 함께 앉아서 설교를 듣는 매시간이 당신의 왕께 새로운 회개와 새로운 신뢰와 새로운 순종의 시간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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