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관한 귀한 글 (매트 펄맨) 나눕니다. 좋은 공부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부활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새로운’ 몸을 입는 부분을 빠뜨리지 않는다. 만약에 이런 생각이 우리의 지금 몸이 ‘새 것과 같은 또는 새 것보다도 더 나은’ 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해서 지금 이 땅에서 입고 있는 이 몸과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몸을 입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활과 관련해서 고민하는 기독교인이 한번 더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사실 성경은 우리가 부활하면 지금 이 땅에서 입고 있는 ‘바로 이 몸’이 변화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영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육적인 존재다. 우리의 정체성에 있어서 우리의 몸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몸은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입고 있는 이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나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동시에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 부활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것 또한 평생 이 땅에서 짊어지고 살았던 병마와 같은 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한다는 것이고, 그 경우 부활은 우리에게 어떠한 소망도 줄 수 없게 된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장래의 은혜(Future Grace)’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옛 몸은 새 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몸이다. 거기에는 연속성이 있다.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나님은 할 수 있다. 부활은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대신 부활은 옛 창조의 변화라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몸을 입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같은 몸을 가지고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는 그에 관한 성경 구절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리스도는 죽었을 때와 같은 몸을 입고 부활했다. 우리는 그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로 이 점을 알 수 있다(눅 24:1-6). 게다가 그의 부활한 몸은 십자가의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요 20:25,27).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대로 따라서 부활할 존재이기 때문에(빌 3:20-21; 고전 15:49), 우리도 같은 몸을 가지고 부활할 것이다. 

두 번째로 “죽은 자의 부활”(고전 15:13, 등)이라는 말 자체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말은 죽은 몸이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만약에 다시 살아난 몸이 죽은 몸이 아니라면 바울은 결코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부활이 될 수도 없다.

세 번째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고전 15:52)라는 말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존 파이퍼는 이 구절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하나님이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이 몸과 부활해서 입을 몸 사이에 아무런 연속성이 없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면, 왜 바울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라고 썼을까? 왜 바울은 ‘죽은 자들은 다시는 살지 못하고(왜냐하면 그들의 몸은 다 썩고 몸 속 모든 분자는 다 흩어져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온갖 식물과 동물 속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라고 쓰지 않았을까? 바울이 그렇게 쓰지 않은 것은 그게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장래의 은혜’).

네 번째로 빌립보서 3장 20-21절에 보면 이 땅에서의 몸은 부활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하나님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몸을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다섯 번째로 예수님은 부활을 언급할 때 무덤에서 나오는 것까지 포함했다. 그것은 부활이 애초에 죽어서 휴식에 들어간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여섯 번째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it is sown… it is raised)”(고전 15:42)라는 바울의 말은 지금 우리의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심고’ 와 ‘다시 살아나며’라는 두 동사를 지배하는 주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역자 주: 영어의 경우에는 같은 ‘it’이 주어다)

일곱 번째로 53절은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죽음의 지배를 받는 몸이 나중에 죽음을 이긴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우리는 새롭게 된 몸을 입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5-37절을 보면, 바울은 마치 우리가 이 땅에서 입고 있던 몸과는 전혀 다른 몸으로 부활하는 것처럼 썼다.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그러나 다음에 따라오는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결코 같은 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우리가 부활해서 입게 되는 몸은 지금 입고 있는 몸보다 더 좋은 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실 이 구절은 농업이라는 비유를 써서 지금의 몸과 부활한 상태의 연속성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부활한 몸을 뿌려진 씨가 자란 식물에 비교한다. 부활한 우리의 몸이 지금의 몸보다 훨씬 더 나은 것처럼 자라난 식물도 애초에 뿌려진 씨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다. 그리고 씨와 식물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는데 그것들은 다 동일한 유기체다. 땅에 뿌려진 씨에서 해당 식물이 자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몸이 나중에 부활한 몸이 된다. 그러나 자라난 식물이 애초에 뿌려진 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부활한 몸도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입고 있는 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우리가 아직도 가져야 할 몸을 입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몸이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아직도 부족하다는 의미다(42-44절). 지금의 몸은 아직 미래의 몸이 아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 부활은 지금 현재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존 파이퍼는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연속성) 그리고 죽은 자는 변할 것이다(새 몸은 사라지지도 죽지도 않는다)”(‘장래의 은혜’).

그럼 도대체 우리의 몸이 변화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바울은 42-44절에서 그 점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약하고, 사라질 수 있고, 영광스럽지 않으며, 육적이다. 그러나 부활하게 되면 이 몸은 능력있고, 사라지지 않고, 영광스럽게 되며 영적으로 바뀐다. 우리의 몸은 능력있게 될 것이다. 몸이 더 이상 스트레스, 피로 또는 연약함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의 몸은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다. 몸이 더 이상 아프지도, 죽지도, 노화되지도 또는 부상을 당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의 몸은 영적이 될 것이다. 몸이 오직 성령님만을 바라고 오직 성령님만으로 충만하다는 의미다. 우리의 몸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진리에 대해서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밝게 빛나는 빛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 몸이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도 밖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승귀와 통치의 지위에 대해서 적절한 외적 증거가 되는, 일종의 빛 같은 것이 우리 몸 주위에서 빛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마태복음 13장 43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표현되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다니엘서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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