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고백에 관한 글 (케서린 팍스) 나눕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계시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애초에 세우신 계획은 서로 친교하는 것, 즉 함께 손 잡고 걸어가는 삶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다른 신자들과 함께 누리는 이러한 교제는 서로가 “빛 가운데” 걷기를 원할 때에 얼마든지 가능하다(요일 1:7).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친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상태로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외로움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공동체 속에서 누리는 교제의 기쁨을 잃은 채 고립되고 있다. 교인들과 함께 빛 속에서 걷기를 거절할 때, 인간은 하나님이 애초에 우리 속에 심으신 친교의 목적을 상실하고 이와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유대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면, 아름다운 친교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의 교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유혹이 있다. 그 유혹은 무엇일까?

우리는 친교 대신 어둠을 사랑한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19-20).

종종 우리는 어둠을 택한다. 왜냐하면 죄를 즐기고, 그 죄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어거스틴도 그의 유명한 기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순결함과 관대함을 허락하소서. 그러나 아직은 원치 않습니다.” 죄를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면 혹여나 내 죄에 대한 책임이 따를까봐 두려울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종종 어떤 특정한 죄의 행위를 왜 꼭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둠은 빛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어둠은 빛에 대항한다. 그러므로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다. 어둠 속을 걸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바로 그 자유에 반항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타인을 속임

내 머릿속 자아는 꽤나 놀라운 녀석이다. 종종 실패와 죄에 직면할 때면 나는 그것들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훨씬 더 자주, 나는 정신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죄악을 정당화하곤 한다. 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면 분노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정죄하는 게 아니라 사리 분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정말로 많은 변명거리가 있다. 

그러나 요한일서 1장 8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죄 때문에 고통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간주한다면, 그건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다른 사람도 속인다는 사실이다.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고 넘어가는 게 문제가 많음을 알면서도, 왜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자녀들과 죄가 가진 문제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때 그 중 한 녀석이 말했다. “엄마는 죄를 안 짓잖아요.” 바로 그 순간, 나는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아이들은 내가 매일 죄를 짓는 것을 보아왔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 점에 있어서 확고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당연히 나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의 죄성에 찬 말과 행동을 ‘죄’라는 단어와 연결시키지 않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내 죄를 정상적이고 맞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죄를 일상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인 내가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아이들이 모른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예수 안에서 기쁨을 쟁취하기 위해 전투를 벌여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자녀들이 나를 죄인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들은 앞으로 엄마의 도움이 없이 죄와 외로운 싸움을 치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은 함께 믿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계속 “전 괜찮아요”라고만 말한다면, 그건 다른 믿는 이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죄의 무게에 짓눌려 싸울 때 함께 싸우고 회개할 공동체, 의지할 공동체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행 속의 기쁨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는 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이 부분에 관해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그런데 나는 그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겼어요.” 그러나 그냥 마음을 열고, “이게 내가 한 행동이에요. 털어놓고 나니 맘이 안 좋네요” 정도로 말하는 것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책, 기사, 그리고 소셜 미디어는 이런 수준의 고백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친한 친구 또는 가족에게 고백하는 것 보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게 더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온라인 지인들로부터 듣는 말, “에이, 나도 그렇게 해요. 별 일 아니에요” 또는, “괜찮아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누가 있어요?” 등등의 위로를 받는 게, 내가 아는 사람과 일대일로 마주 않아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구미에 맞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내 글을 읽는 이방인은 내가 유혹과 벌이는 전쟁, 내게 꼭 필요한 그 전쟁에 동참하는 사람이 아니다.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해야 힘을 합쳐 죄와 싸우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정체성을 기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로 가득하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

매주 나는 소수의 친구들과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한다. 서로의 죄를 고백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를 기쁨으로 이끈다. 내 마음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를 향한 충성과 내 기쁨을 앗아가려는 내 마음 속 그것들을 서로 고백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일이 일어난다.

-나의 죄를 똑바로 보게 된다. 죄를 심각하게 대하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고백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죄를 더 미워하게 만든다.

-교제 안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내 친구들은 내 죄를 듣고 충격받지 않는다. 또 그들은 그것을 합리화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신 듣고 기도한다(골3:12-14).

-은혜를 새롭게 깨닫는다. 죄의 고백이 슬픔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아직 제대로 된 게 아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복음 안에서 다시 기뻐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서하셨음을 깨우쳐준다. 나는 패배했다고 통곡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내 죄값을 다 치른 바로 그 십자가에 내 짐을 내려놓는다(골2:13).

-동료를 얻는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또 그 분이 주신 사랑과 용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이제 싸워야 한다. 내 동료는 나를 도와준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죄와 싸우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골3:16).

-응답받은 기도에 기뻐한다. 예수님의 얼굴을 맞대고 볼 그날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허락하신 승리가 내 속에서 넘친다. 다른 이들과 함께 죄와의 싸움을 수행할 때, 우리는 응답받는 기도를 누리는 기회를 얻고 함께 기뻐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어둠에서 빠져나와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함께 빛 가운데서 걷기 시작한다면, 진정한 친교가 주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둠에 머물던 그 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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