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에 관한 귀한 글 (데이빗 메티스) 나눕니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깨어 있는 시간의 기껏해야 1퍼센트를 공예배에 쓴다.

계산법은 이렇다. 매일 밤 당신이 약 7시간(대부분의 성인에게 필요한 최소 수면시간)을 잔다고 하고, 당신이 참석하는 주일 예배 시간이 약 75분일 때(당신이 주일마다 충실하게 예배에 참석했을 경우), 일주일에 깨어 있는 시간은 120시간이니, 당신이 예배를 위해 쓰는 시간은 대략 1퍼센트가 된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1퍼센트만 매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사용한다는 사실에 당신도 나처럼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낮은 비율이다(특히 교회 생활이 기본적으로 주일 오전에 한정되어 있다고 우리가 가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한주간의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무엇에 목숨을 걸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평균적인 미국인은 하루에 거의 8시간을 뉴미디어나 기성 미디어에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50시간 이상을 각종 영상물을 보는 데 썼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은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이제 삶은 점점 덜 집중되고 덜 생산적인 노동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디바이스들을 통해 콘텐츠를 점점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가 공예배라 부르는 이 놀랍도록 작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1퍼센트에 대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단 한 시간 

첫째, 매주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일아침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이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에 인식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런 개념을 가지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교회 된다는 것’(being the church)은 단지 매주 60-75분짜리 주간 이벤트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가 모일 때만이 아니다. 가정으로, 학교로, 직장으로, 지역사회로 흩어져 있을 때도 우리는 교회이다. 깨어 있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일주일 168시간 모두 우리는 교회다. 

현대인의 삶의 슬픈 단면, 곧 자동차가 퍼뜨려 놓은, 서로 섞이지 않고 각자 따로 사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일주일 내내, 평생 동안 펼쳐지는 삶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일어나는 이벤트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24시간, 7일, 365일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예배당에서만이 아니라 거리에서나 지역사회 어디에서나 매일 섬김과 사랑과 예배의 삶을 살라는 명을 받은 사람들이 곧 교회다. 

‘교회 된다는 것’은 한 주간의 삶 전체가 아니라 단지 한 번의 모임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축복하고 서로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언제 우리의 소중한 신약성경의 ‘서로’를 실천할 수 있을까? 예배 전후에 나누는 짧은 시간으로는 사도들이 우리에게 그려 준 우리의 삶을 함께하는 그림에는 비참하도록 불충분할 것이다. 

1퍼센트 이상

교회 된다는 것은 단 1퍼센트의 이벤트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서로들’ 곧 서로 영접하는 것(롬 15:7), 서로 사귀는 것(요일 1 :7, 11-12; 요이 5), 서로 돌아보는 것(고전 12:25), 서로 선을 행하는 것(살전 5:15),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우는 것(롬 14:19, 살전 4:18; 5:11),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것(롬 12:10)을 포함한다.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매일 실천하는 이러한 ‘서로들’은 갈등이나 관계의 고통으로 인해 삶이 가장 힘들 때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서로 용납하는 것(엡 4:2, 골 3:13), 서로 친절히 대하는 것(엡 4:32),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는 것(엡 5:21), 서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골 3:9), 서로 비판하지 않는 것(롬 14:13), 서로 비방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약 4:11; 5:9)이 그것이다.

서로 조화롭고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1퍼센트 이상의 삶을 드려야 한다(막 9:50, 롬 12:16, 15:5). 가장 중요한 최고의 ‘서로’를 실천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요 13:34-35; 15:12, 17; 롬 12:10; 13:8; 살전 3:12; 4:9; 벧전 1:22, 요일 3:11, 23, 4:7), 곧 서로의 짐을 져 주고(갈 6:2) 서로 섬김으로써(갈 5:17)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다. 

착각 하나가 오늘날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한 주간 모두 교회 되어 살아가는 경험도 관점도 빈곤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잘못된 생각, 곧 교회에서 섬기고 선을 행하는 주된 방법은 주일 아침에 “앞에 서서” 사회를 보거나, 찬양을 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헌금위원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168시간 모두 교회 된다는 것에 대한 빈곤한 이해를 드러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목자와 교사로 삼으셔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셨다(엡 4:11-12). 우리의 온 몸으로 하라고 명하신 “봉사의 일”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30분짜리 메시지가 아니다. 성도들이 거실에서, 커피숍에서, 마당에서, 직장에서 서로 함께하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 

이제, 1퍼센트의 중요성을 맥락 속에 넣는 것과 함께 나란히, 우리는 또한 공예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한 주간에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습관”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예배는 한 주간 모두를 교회로 사는 삶에서 “일주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시간”이라고 책임회피성 발언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의 삶에 주어진 한 주간의 시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무엇이라고 누가 감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희생의 사랑을 행하라고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 시간을 우리가 드리는 공예배보다 더욱 중요하고 더 영으로 드리는 예배로 여기실 것이다. 진심으로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교회로서 주일마다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것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예배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한 주간의 습관이요 기쁨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가장 위대한 무기 중 하나일 수 있는 이유는, 공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의 공급의 세 가지 필수 원칙,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그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귀를 여는 것(기도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몸에 속하는 것(성도의 교제 안에서)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예배에서 우리는 예배에의 부름에서, 말씀을 읽고 가르칠 때, 신실한 복음의 설교에서, 성찬의 말씀에서, 세상에 빛으로 보냄 받는 파송 명령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듣는다.’ 공예배에서 우리는 죄 고백, 찬양, 감사, 낭송, 청원기도, 믿음으로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반응한다.’ 그리고 공예배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한다. 

하나님은 각자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고 예배하라고 우리를 만들지 않으셨다. 개인 성경묵상도 개인 기도도 영광스러운 선물이며 꼭 필요한 것이다. 소홀히 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의 뇌가 다른 것들, 곧 서로 경쟁하는 다른 내용들로 넘쳐나는 이 정보화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개인의 영적 습관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누리는 하나님과의 꾸준한 친교의 맥락 안에서 비로소 번성하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교를 위한 리듬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이다. 

한 시간과 한 주의 모든 시간

공예배는 매주 168시간 가운데 단 한 시간이며 이것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교회로서 살아가는 시간 중 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공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경건한 기쁨으로 응답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이 긴장 관계에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은 쌍둥이다. 대적이 아니라 친구다.  

교회 안에서 규칙적이고 의미 있는 헌신은 한 주간 모두 우리가 교회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또한 우리가 교회로서 깨어 있는 120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 1퍼센트의 예배의 헌신을 구체화한다. 매주 함께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실하게 예배하는 교회는 매시간 교회로서 살아갈 준비가 더욱 더 되어 있고, 한 주간 모두 교회로서 사는 교회는 매주일 가장 감미로운 예배를 함께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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