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관한 귀한 글 나눕니다. 기도하시며 주일 예배 준비하시길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여리고성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라(수 6:3-4). 

군사 전술로는 터무니없고 매우 위험한 시도다. 고고학 발굴 보고에 따르면, 여리고성은 4-5미터 간격으로 높이 10미터의 성벽이 두 겹으로 두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상 저지대이면서도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문제를 잘 모를 때는 오히려 믿음을 가지기가 쉽다. 그러나 문제의 실체가 보이고 예상되는 암담한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믿음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앞서 가나안 땅에 숨어들어간 이스라엘 정탐꾼 열둘 중 열이 그 땅을 직접 보고는 믿음을 잃어버렸다. 

이처럼 난공불락의 성벽 아래를 매일 한 바퀴씩 돌다가는 막연하게나마 있던 믿음마저도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성을 돌라 하신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이셨다. 

그냥 눈 감고 막연하게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면 안 된다. 지금 나의 상황이 어떠한지 두 눈 뜨고 정확하게 봐야 한다. 직시해야 한다. 바로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채 피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절망의 끝에 서 봐야 한다. 믿음은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정확히 보고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 주위를 돌 때 어떻게 할지 조목조목 말씀해 주신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그 앞뒤로 이스라엘 군사들이 행진하라고 하셨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희년이나 절기에 부는 양각 나팔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예배와 찬양을 가리킨다. 나팔은 또한 기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민 10:9). 

전쟁에 나갈 때 나팔을 부는 것은 온 백성이 긴급하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에서 나팔을 불며 언약궤를 메고 행진하는 것은 예배의 행진, 기도의 행진을 의미한다. 이 행진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히 11:30)라고 기록하고 있다. 믿음으로 여리고를 돌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믿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이 행진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여리고 성의 불가능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던 것이다. 

매일,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믿음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여리고 성을 돌았는지 보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행진하니라(수 6:12).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수 6:15). 

그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해가 뜨자마자 언약궤를 앞세우고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았다. 양각 나팔을 불며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아마 한 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 새벽, 문제의 한복판에서 성벽을 무너뜨리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한 것이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교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있다. 일어나자마자 먼저 바쁜 일부터 하거나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켜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이메일을 체크하거나 해서는, 우리 삶에 다가오는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힘을 얻지 못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일어나자마자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우리는 그 문제 속에서 먼저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걸음을 주님께 의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그다음에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할 수 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걱정만 한다. 기도는 사람, 매일 열심히 문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사람은 기대한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매일 새벽 한 시간, 주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새벽, 날이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매일 기도하라. 먼저 기도하라. 숙제처럼 기도하라.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숙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침묵이 기도가 되다

여호수아가 성벽을 도는 백성에게 명령한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수 6:10).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행진하라는 명령이다.

침묵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불평을 막는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면, 누군가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와, 저 성벽 좀 봐! 정말 대단해. 우리가 이렇게 성벽 주위를 돈다고 저 대단한 성벽이 무너지겠어? 여호수아 장군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말’이다. 여호수아 세대의 부모들은 말로 망했다. 여호수아도, 그 백성도 부모 세대가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한다. 입을 다문다. 

둘째, 침묵은 기도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한 번씩 언약궤를 바라보고 양각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여리고 성의 위용에 놀라 의심했겠지만, 불평과 의심의 입을 다물고 계속 양각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도는 가운데 그들의 침묵은 기도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침묵의 행진, 기도의 행진을 하면서 믿음이 커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으로 외칠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말이 인생을 결정한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면, 그 말이 내 삶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말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의 말을 하려면 매일 기도하되, 마음에 믿음이 가득 찰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그 믿음의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의 말을 하라. 그때 역사가 일어난다. 

끝까지 순종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하게 순종했다. 상식으로도 과학으로도 말이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그들은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 그렇게 도합 열세바퀴를 다 돌았다. 한 바퀴씩 돌 때마다 성벽이 조금씩 금이 간 것도 아니다. 어떤 조짐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철저하게 말씀대로 순종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대로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 

이 순종 행위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도의 행진, 예배의 행진이다. 아침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고 기도하는 삶을 끝까지 순종해 보라.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답답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 나는 무슨 생각부터 하는가? 여리고성이 무너졌듯이, 내 삶에서 무너지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매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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