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글 나눕니다. 

 

나는 1970년 출간된 프란시스 쉐퍼(기독교 철학자)의 Mark of the Christian(그리스도인의 표지)을 나오자마자 읽었다. 쉐퍼는 요한복음 13:35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리고 이어서 요한복음 17:21의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기도를 인용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쉐퍼는 이 두 구절을 연결했다. 

[요한복음 13:35에 따르면] 세상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가짜 그리스도인이라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 여기 요한복음 17:21에서 예수님은 훨씬 더 예리하고  심오한 다른 뭔가를 말씀하신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과 예수님의 주장이 참되고 기독교가 참이라는 것을 믿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6-27).

아름답지만 너무도 아픈 말씀에 근거한 지적이다. 

최후의 변증

막 열여섯 살이 된 나는 친구와 가족에게 복음 진리를 어떻게 증언할지 고민하던 초신자였다.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일치를 “최후의 변증”이라고 불렀다. 사랑과 일치는 사실상 우리가 가진 신앙의 궁극적인 변호이다. 

쉐퍼 덕분에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믿는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가장 큰 증거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복음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를 별로 찾지 못할 것이다. 그건 가정과 가족 또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1977년에 각자가 다니는 교회에서 힘들어하는 몇몇이 따로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했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사실상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새로운 교회 하나를 세우셨다. 스물세 살 순진한 공동 목사로서 나는 우리가 하나 될 비결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교인 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떠나는 교인도 많았다. 그러니까 쉐퍼가 말한 “참된 그리스도인이 하나 되는 현실”(27)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깊어진 분열

예수님을 믿은 지난 52년 동안, 나는 성도들 사이의 갈등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나 작년만큼 심한 적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한때 사랑했던 교회를 향해 화를 내며 떠났다. 이전에만 해도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가르침과 예배를 기반으로 교회를 선택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적 관점과 코로나바이러스 프로토콜을 포함한 각종 비본질적인 문제를 토대로 교회를 정한다. 

교회는 부족주의, 비난, 그리고 불가능한 용서라는 전염병을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과 일치에 치명적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만연한 생각은 미묘함과 뉘앙스를 위한 조금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때때로 다른 관점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공정함과 자비로 인식되기보다는 비겁한 타협으로 여겨진다. 

슬프게도 복음주의자조차도 분노와 경멸을 바탕으로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치”를 공유하는 다른 특수 이익 단체와 하나 다를 것 없이 보일 때가 적지 않다. 성마르고 싸우려고 안달인 부정적인 심성이 우리가 형제자매를 적으로 대하는 한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건 꿈도 꾸지 말라는 쉐퍼의 말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탄의 전략에 빠져들다

비본질적인 사안을 놓고 다투는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는 현상은 일시적인 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전도의 문을 막고 있으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게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신자들조차도 교회가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처를 주는 곳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탄의 특기가 하나님의 가족을 참소하는 것이다(계 12:10). 너무도 자주 우리는 사탄을 위해 일한다. 사탄의 목표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게 유혹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사실상 마귀의 자녀처럼 행동한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마귀를 대적하려면,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 중심 원리야말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마음과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4-15).

다른 의견을 하나로 만들기

바울은 로마서에서 어떤 고기가 “불결”한지, 또 예배는 언제 드려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하나같이 당시 엄청나게 논쟁의 여지가 많은 문제였다. 오늘로 따지면 정치 이슈 또는 코로나 대응 같은 주제였다.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공유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계시는 다음과 같다. 진정한 사랑과 일치를 이루겠다고 가장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포기함으로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희생해야 한다. 

우리는 “의견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롬 14:1). 또는 NLT 성경(영어성경의 한 번역본)이 표현했듯 “그들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들과 논쟁하지 말라.” 사랑에는 굳이 도매급 계약이 필요하지 않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롬 14:3).

바울은 똑같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서로 다른, 심지어 반대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롬 14:5).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얼마든지 상반된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여전히 내 의견보다 사랑을 가치 있게 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

믿음과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비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상반된 사람까지도 다 인정하신다. 구약의 율법이 금지한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먹지 않아도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면, 안식일 또는 다른 요일에 예배하는 사람들 모두를 하나님이 다 받으신다면, 백신을 맞든 안 맞든,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다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롬 14:4). 마치 우리가 전지전능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나님은 경고하신다. 우리는 왜 다른 형제자매의 결정과 마음, 동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 14:12-13). 우리는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답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롬 14:19, 22). 평화와 교화는 자연스럽게 오는 게 아니다.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다. 

평화를 “추구하라”(또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 NIV)는 명령이 의미하는 것은 굳이 말하거나 온라인에 게시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없다면, 또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뿐 아니라 그 인도를 느끼면서 은혜롭게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나 성경대로 행하고 당신이 아는 사실은 오로지 하나님과 당신 사이의 비밀로 간직하라는 것이다. 의견이 강하다고 그게 꼭 하나님이 그것을 표현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켜보는 세상 앞에서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사랑과 일치를 위해 전진하기

분열된 시대에 사랑과 일치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실제적인 조치는 뭐가 있을까? 

1. 야고보서 1:19을 연습하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이것만 지켜도 놀라운 정도로 사랑과 일치가 자라날 것이다. 

2.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가능하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라.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지 말라. 

3. 당신이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 스스로에게 물으라. 내 말이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불신자를 예수님께로 이끌 가능성이 높은가 아니면 반대인가?

4. 교회가 줄 수 있는 사랑과 일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라. 사랑과 일치가 자연스럽게 또는 쉽게 올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 

5. 선동자가 된 것을 회개하라. 피스메이커가 되겠다고 다짐하라. 

6. 교회 지도자와 이야기하라. 문제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사랑과 일치를 촉진하는 데 당신이 어떻게 쓰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라. 

7.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한 형제와의 관계가 완전히 바뀐 적이 있다. 내 아내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위해 수십 년 전부터 중보 기도를 하고 있다. 

8. 교만을 물리치고 진정한 겸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A.W. 토저(A. W. Tozer)는 이렇게 말했다. “겸손한 사람만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자신의 크기와 한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Tozer on Christian Leadership, 11). 명확하게 생각하는 것은 겸손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진정한 일치는 다음에 근거를 둔다. 

• 예수님에 대한 기본 진리를 향해 공유하는 믿음,

• 이차적 믿음을 일차적 믿음 위에 두는 것을 거부함,

• 예수님과 다른 사람을 향해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줌, 

•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를 신뢰함.

50년이 지나 분열이 숨 쉬는 공기가 되어버린 지금 ‘그리스도의 특징’을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의 메시지는 내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쉐퍼의 메시지는 진실이다.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겸손한 사랑과 일치 안에서 살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일 때만,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또 그중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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