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금요일 / 요한계시록 21장 1-4절
-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화려한 비유나 공포의 상징들 사이에서 갑자기 조용해지는 구간입니다.
그는 이전의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는 눈물과 죽음과 아픔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 묘사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현실과 강하게 대비됩니다.
우리는 아직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고, 영혼이 닳아지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미래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며,
마치 어린아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듯 눈물을 직접 닦으신다고 말합니다.
그 이미지는 과장되지 않고 아주 구체적입니다.
기계적으로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가까이 두고 손으로 만지는 관계입니다.
희망이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리 안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희망을 ‘먼 훗날 있을 일’로 생각합니다.
나중에, 언젠가, 세상이 끝나면.
그러나 이 말씀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지금 살아내는 신앙의 방향을 묻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사람은
현실이 완벽해져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눈물이 없을 날을 기다린다고 해서
오늘의 눈물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눈물조차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마음에 두면, 우리는 조금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극을 가볍게 말하지 않고,
상처를 억지로 긍정하지 않고,
아픔을 치워버리는 대신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언젠가 완전히 닦아주실 얼굴이라면,
오늘은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습니다.
“괜찮다”는 값싼 위로가 아니라,
“나는 떠나지 않겠다”는 동행의 언어로.
언젠가 모든 상처가 치료될 것이라는 믿음은
상처를 무시하게 만드는 믿음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게 만드는 믿음입니다.
희망을 미래에만 두지 않고
오늘의 자리에서도 조금씩 구현해 내는 것,
그것이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는 사람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광야 같아도,
도시가 무너진 폐허 같아도,
하나님은 끝이 아니라 새 시작을 준비하는 분이라는 사실.
그 약속 하나가 오늘을 버티게 하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내일을 향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