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도 들여다보고 싶은 은혜
4월 8일 수요일 / 베드로전서 1장 10-12절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종종 구원을 너무 익숙하게 여깁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갑니다”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받은 이 구원은, 선지자들이 평생 찾고 연구하던 것이고,
천사들조차 몸을 굽혀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신비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복음이, 사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눈물로 기다리던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아를 보았지만 흐릿하게 보았습니다.
고난은 보였고, 영광도 보였지만,
그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될지는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이 “부지런히 살피고 상고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그 말씀의 완전한 성취를 기다리며 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이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를 알고, 부활을 알고, 복음의 완성을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예고했고, 우리는 성취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았고, 우리는 그 은혜 안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정작 우리는 복음을 너무 많이 들어서 감격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익숙해졌고, 은혜는 상식이 되었고, 구원은 감동이 아니라 배경음처럼 흘러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붙들고 있는 복음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이 일을 살펴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천사들은 죄 사함을 경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구원을 “관찰”할 수는 있어도,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넘어졌던 자들인데, 용서받았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인데, 자녀가 되었습니다.
멀리 있던 자들인데,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받은 은혜는,
어쩌면 천사들이 부러워할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익숙함 속에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봅니다.
선지자들이 기다렸고, 천사들이 들여다보는 그 구원을
제가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의무로 하지 않습니다.
감격으로 합니다.
묵상 질문
- 나는 요즘 복음을 “감격”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 선지자들이 기다리던 구원을 이미 받은 사람답게, 오늘 나는 어떤 감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기도
주님,
제가 받은 구원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선지자들이 기다렸고 천사들도 들여다보는 이 은혜를
오늘 다시 떨림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복음이 제게 늘 새롭고, 늘 놀랍고, 늘 감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