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소중함이 잊혀진 세대에 살면서
2026년 10월 8일 목요일 / 요한일서 2장 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우리의 부모님이 진짜 우리를 나아준 부모님이신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정말 많이 닮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받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부모님의 삶의 고집과 철학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크든지 적든지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우린 이것을 가족 혹은 식구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젊었을 때에, 일정한 공간에서 비슷한 삶의 질을 함께 나누며 진한 스킨십을 자연스레 주고 받던 사람들, 우린 그들을 친구라도 부릅니다. 가족과는 다른 또 다른 식구처럼의 친근함은 왜 그리 진했는지요.
철이 들어가면서 생각과 이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도 모르게 또 다른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됩니다. 가족과 친구들하고는 많이 다른, 소위 말하는 고상한 비전을 나누며, 동시에 이상야릇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서도 함께 하나가 되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들을 누리며 현재 우리는 이곳에 와 있습니다.
모두 다 소중한 사람들이요 관계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 우리와 더욱 친근한 삶을 함께 나누길 원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영원’입니다.
시간의 한계 속에서 부모와 친구들과 그리고 동료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셀 수 없는 약속들 모두는 사라집니다. 이미 깨진 약속들, 사기성이 있는 약속들, 무책임하게 농담식으로 건네는 약속들, 아직은 붙들고 싶은 가능성 있는 약속들, 모두 말이지요. 사실 이러한 우리의 모든 약속들은, 요한이 이야기 하는 ‘이 세상에 속한 욕심과 정욕’이라는 한계 안에 있음을 우리가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단 한번도 살가운 스킨십을 나누어 본 적 없는 우리의 주님, 하지만 일방적으로 친밀함을 선포하고 계시는 참 좋으신 우리 주님, 세상이 줄 수 없는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이 ‘친밀함’을 느끼게 하시고 의지하게 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말이지요.
약속에 지쳐버린 이 세대에서 이 주님의 약속마저 가볍게, 조건적으로 그리고 계산적으로 다가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필요 이상의 기대와 소망을 걸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더욱 긴장시켜 주셔서 쉽게 타협하고 마는 우리의 부족함을 창피하게 여길 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삽니다!
이 놀라운 약속이 주님의 일방적인 외로운 약속이 아님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을 가슴 깊이 늘 간직하며 담대하게 영원을 향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고도 눈앞의 인정과 이익에 매여 살아온 저를 돌아봅니다. 약속을 주신 주님보다 당장의 편안함을 더 의지했던 마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주님 앞에 가져가게 하시고, 오늘 해야 할 순종을 미루지 않게 하소서. 지나갈 것을 붙들기 위해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시며,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마음이 오늘의 말과 선택에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유한한 시간에서 살면서 영원을 묵상하고 믿는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음을 많이 느낍니다. 유한한 감각으로 삶의 재미를 느끼려 하면서 영원을 소망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힘들고 어려움의 순간이 밀려오면, 영원을 소망하고 감사하게 되니, 참 창피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고난을 주시는가 봅니다. 영원을 소망하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고백조차 주님의 주신 은혜라 믿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