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 요한일서 2장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죄의 무게를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죄책감에서는 벗어나고 싶지만,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죄의 용서를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함께 선포합니다.
여기에는 복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외면하거나 적당히 타협하심으로 우리를 받아 주신 것도 아닙니다. 죄가 일으킨 문제를 하나님께서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가 별것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만을 위한 화목제물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속한 작은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경계와 판단을 넘어 온 세상을 향합니다. 우리는 때로 누구에게 은혜가 주어질 만한지 판단하고, 누구는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구분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격을 심사하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자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얼마나 넓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죄를 가볍게 여기면 십자가의 의미도 가벼워집니다. 반대로 은혜를 나에게만 한정하면 십자가가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은 죄를 합리화할 이유가 아니라 죄에서 돌아설 이유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닫아걸지 않습니다.
기도
주님,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지도 않게 하소서. 저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