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역사 이야기 (3)

 

 

유럽 대륙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물줄기는 거침 없이 영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압력과 그에 의한 영향으로 인해, 교회 개혁의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교회의 정립에 대한 성령의 강한 바람에는 어떤 세력도 방해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쉽지 않게 시작한 영국의 개혁 교회는, 처음에는 루터파의 독일 찬송을 받아들였지만, 칼빈의 장로교회의 찬송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칼빈에 의해 심어진 장로교회의 뿌리는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단마다 통일된 찬송가를 쓰고 있지만, 1983 통일 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교단마다 다른 찬송가를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각기 교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찬송 또한 교단마다 조금씩은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영국 교회는, 18세기 초까지는 칼빈의 장로교 찬송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700년대가 되자, 영국에는 찬송의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아이삭 왓츠‘(1674-1748)라는 목사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소위 영국 찬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분은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고 초교파적인 교회를 섬기면서 스스로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는 19세가 되던 때부터 찬송시를 쓰기 시작해서 수백 편의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당시의 백년이 넘도록 사용해 오던 시편의 찬송가에 많은 영국 교인들은 싫증을 느꼈고 마치 실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아 오던 때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시도였지만, 많은 교인들이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왓츠 목사는 더욱 힘을 얻어, 많은 찬송시에 성도들의 신앙의 표현을 담아서, 그들이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를 있도록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의 찬송가에도 있듯이,

 

            날은 주의 정하신 기쁜 날일세

            말인가 위하여 돌아가셨나

 

찬송의 주체를, 부르는 성도들에게 집중한 것을 있습니다. 이러한 왓츠 목사의 찬송은 영국 전역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고 찬송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데에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영국의 찬송은 우리가 아는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 형제 목사들을 통하여 더욱 급진적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웨슬레 목사(1703-1791) 뛰어난 설교가요, 전도자로 활동을 했고, 그의 동생인 촬스 웨슬레 목사(1707-1788) 형의 사역을 도와 찬송시를 썼던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두분의 사역의 중점은 전도에 있었으며 많은 야외 집회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웅장한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기존의 찬송은 이분들의 사역에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반주 없이도 쉽게 부를 있는 음악, 처음 찬송을 대하지만 마음을 열고 부를 있는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가사, 감정을 움직일 있는 표현력 있는 음악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다분히 대중적인 요소가 있는 찬송집을 간간이 만들어 대중 집회 때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들고 옵니다

            비바람이 때와 물결 높이 때에

 

이렇게, 현재의 우리의 찬송가에 남아 있는 웨슬레 목사의 찬송이 말하듯이, 전도용 노래인 것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찬송은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빨리 영국 전역에 번지어 갔습니다. 영국의 어떤 개혁교회에서도 이러한 찬송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전통의 영국의 특유한 찬송은 계속해서 복음 전도와 맞물려 발전, 계승되어 갔습니다. 찬송의 물결은 나라와 교파를 초월해 세계적인 커다란 찬송의 물줄기를 이루어 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교회의 대부흥운동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전역을 복음의 불꽃으로 물들였습니다. 불꽃은 마침내 세계로 번지어 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물줄기 가운데에는 항상 찬송이 있었습니다. 찬송의 사역 없이는 아마도 복음의 전파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한국도 때에 복음을 받아 들인 나라들 중의 하나이며, 복음과 나란히 동반하여 들어온 찬송의 영향 또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과연 영국의 찬송으로 인해 미국의 찬송은 어떠한 모습으로 계승, 발전 되었는지, 또한 미국의 찬송은 우리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다음에 계속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Similar Posts

  • 찬송의 역사 이야기 1

    우리가 현재 부르고 있는 찬송은 어떻게 우리의 손에 오게 되었나?   과거의 믿음의 조상들은 어떠한 찬송을 불렀을까?   과연 어떠한 역사의 흐름을 통해 찬송의 전통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지를 보렵니다.    우선 성경에는 많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찬송‘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 번역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찬송 하다‘   ‘노래하다‘ ‘영광을돌리다‘ 등등 ,여러가지의 용어들이 사용되고있는 것을 볼…

  • 믿음이란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원죄성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악한 본성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봐도 더러운 나의 것들충만할 때,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거룩해 보이는 나의 모든 것들계획하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나의 것들기도하며 주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심지어 나의 선한 노력의 모든 것들 이러한 것 모두를 포기하고 주님의 것을 다시 묵상하기 위해 한…

  • 찬송의 역사 이야기 (결론)

    찬송의 역사 이야기 (결론)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국가의 힘이 가장 없을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선비로 시작해서 머슴으로 살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누군가로부터 지배를 받던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권력이 있고 물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사랑과 나누는 사랑이 있는 기독교가 부담스러운 종교였겠지만 , 무엇인가로부터 피해의식이 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처럼 위로가 되는…

  • 찬양의 성경적 소고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이사야 43:21-22)   1.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물론 그 사람 조차도 하나님의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값진 피를 이 세상에 주고 사신 것이 곧 교회이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 찬송의 역사 이야기 4

    찬송의 역사 이야기 (4)               종교의 탄압으로 인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미국이라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 미국의 교회는 시작되었고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단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모든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무사히 미국으로 건너온 그들에게는, 뭐라…

  • 동네 변호사 조들호

    좋은 드라마는 본다.  정말 좋은 드라마에는 박수갈채까지도 아끼지 않는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 숨겨진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불의의 모습들…  사람의 생명과 존엄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의 악한 모습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들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세상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까발기며 제대로 활기치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조직이 들어서면서부터 교회에도…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