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6월 29일 월요일 / 시편 126편 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인은 기쁨의 이유를 자신의 삶에서 찾지 않습니다. 풍성한 수확도, 안정된 현실도, 눈앞에 펼쳐진 미래도 아닙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그것은 포로에서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 성공담으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포로 귀환은 더 큰 귀환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곳,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데리고 나오시는 일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큰 일”은 하나님께 다시 붙들린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쁨은 자주 현실의 움직임에 묶여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기쁘고, 계획이 이루어지면 안도하며, 기대가 무너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나 시편 126편의 기쁨은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가장 큰 일이 아직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형편을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해 주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이 인간에게 행사하던 최종적인 권리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다른 통치 아래로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쁨은 낙관주의와 다릅니다.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그리고 그 문장은 과거형입니다.
아직 눈물은 남아 있고, 아직 기도는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회복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미래의 가능성보다 하나님의 완료된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기도
주님, 저는 자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 때문에 이미 주어진 것을 잊어버립니다.
삶의 부족함과 미완성에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가장 큰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저의 기쁨이 형편의 개선이 아니라 구원의 사실 위에 서게 하시고,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