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21-23절
-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하나님께 따질 수 없는 이유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왜 제 인생은 이렇게 하셨어요?”
“왜 저 사람에게는 저런 기회를 주시고, 나는 그렇지 않은가요?”
“왜 어떤 사람은 쉽게 믿는데, 나는 이렇게 오래 헤매야 하나요?”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께 묻고 싶은 질문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조금 뜻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빚습니다.
진흙은 자기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질지 결정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시니까 그냥 입 다물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괜찮은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찾아갔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 제가 얼마나 잘했는지 보세요”라는 말보다
“하나님, 저 같은 사람을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셨습니까?”
라는 말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 인생을 전부 이해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하나님께 모든 답을 받아내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봅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하나님, 저는 제 인생도, 제 믿음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신 것이 제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긍휼이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니 오늘도 제 인생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어쩌면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 앞에서 자꾸 하나님께 이유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아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제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저를 붙드시는 주님의 긍휼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