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목요일

 

하나님을 알아 가는 귀한 글 (팀 쇼레이) 나눕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경고의 장이다.

열왕기상 11장 1절에서 11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솔로몬은 훌륭하게 시작했다가 형편없이 끝을 맺는다. 그는 신실한 사람으로 시작했으나(왕상 3:3-10) 영적으로는 실격한 사람이다.

솔로몬의 종말은 그의 마음이 나뉘었을 때 일어났다. 비록 그가 여호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른 신들을 함께 섬겼다. 믿음을 유지한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종교를 물었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처럼 그는 여호와를 따른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다양한 것을 섬기는 신앙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로몬의 죄는 하나님을 뺀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왕상 11:4-8)을 더한 것에 있다. 그는 하나님과 다른 신들을 더하여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을 섬기듯이 여호와를 섬기는 동시에 그모스와 아스다롯에게도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플러스 하나님이라는 혼합주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신들을 더하는 순간 그는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것이다(왕상 11:9).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

하나님은 다른 신을 더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헌신을 받으셔야 한다(눅 4:8). 하나님은 “내가 상상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성령으로 계시는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유일한 근원이고, 통치하는 주권자이시며, 구원자이자 판결하는 분이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유일성과 주권을 말하는 배타적인 언어를 불편해한다. “참된 하나님 vs 거짓 종교”와 “절대 진리 vs 나의 진리”라는 용어는 (기독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상당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되심만이 다른 신과 다른 믿음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살전 1:9, 요 14:6, 요일 5:20-21). 

사람들은 배타주의보다는 혼합주의를 선호한다. 유일한 주권자이고 당연히 섬겨야 하는 절대자 하나님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어떤 대상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영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른다.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보다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그들과 타협한다면 당신은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며,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는 하나님을 등지고, 성경적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무엇인가 더하는 것, 즉 God-plus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제하는 God-less와 같은 것이다. 

당신의 그모스와 몰렉은 무엇인가? 

이러한 영적 이중성은 거짓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영적 불신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세상이 그분과 경쟁자가 되도록 우리 마음에 쏟아 놓는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고 허용할 때 일어난다(약 4:3-4; 요일 2:15-17). 그것은 어떤 목적, 사람, 원인, 캠페인, 갈망, 기쁨이나 소유물 등이 마음을 분열시키는 것이다(마 6:24; 엡 5:5; 고전 6:14-20; 7:29-31; 10:21-22).

핵심은 간단하다. 당신은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긴다. 돈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앗아간다. 성경에서 말하고 서로를 향해 헌신하는 결혼 관계 외에 성적 즐거움을 탐닉하려는 생각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고갈시킨다. 정치적인 충성심이 우리의 헌신을 가져간다. 사회적 각성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는다. ‘좋아요’와 ‘공유’가 축적되는 만큼 진리를 향한 헌신과 믿음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하는 것은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한 명, 두 명 또는 열 명의 또 다른 연인을 두고 하나님과 결혼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만약 세상이 우리의 또 다른 연인이 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일 2:15-17; 약 4:3-4)? 우리는 깊은 슬픔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약 4:6-10). 우리의 마음에 우상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돌아서서 우상 숭배의 죄를 고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은혜 안에서 참되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살전 1:9)을 섬겨야 한다(요일 1:7-9).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날마다 용기 있게 선택하며 전심으로 섬기는 시간을 마주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셔야 한다. 이러한 일을 시작하며 알아야 할 것은 영적으로 오직 한 분만을 섬기려고 할 때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멸시와 소외를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가 사람들을 아주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할지라도 세상은 우리와 같이 대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게 하고 항상 그분께 충성하도록 이끄는 곳이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장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세상은 곧 우리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어디에 충성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인가 아니면 친구들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다른 신들인가? 진리인가 아니면 대중적인 의견인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수구주의인가? 하나님의 도덕법인가 아니면 진보주의인가? 다양한 것을 향한 충성인가 아니면 오직 한 분을 향한 사랑인가?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적 음성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바른 소리 혹은 세상을 따라 하는 앵무새의 음성인가? 

하나님과 다른 신들 그리고 인생의 쾌락, 내가 추구하는 일과 인생의 목표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 우리가 선택하는 그 순간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말해야 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그리고 우리는 덧붙여야 한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명령하신 것처럼, 그를 섬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만 섬길 것이라고 말이다(눅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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