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23-26절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사탄은 사탕발린 달콤한 말로 썩게 하나, 지혜는 쓴 말로 책망하고 강건하게 한다. 책망은 히브리어로 ‘토카하’인데, 비난, 견책, 징계, 꾸지람, 논증 등의 뜻을 포함한다. 책망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이 돌이키도록 이 세상을 향해 책망한다. 책망을 받지 않는 것이 재앙과 두려움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지혜의 요청을 듣고 마음을 돌이킬 때 지혜는 지성을 전수해 준다.

그렇다면 왜 지혜의 말로 책망할까?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에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다. 현대 교육은 책망과 징계를 잘못된 교육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잘못을 책망하라고 한다. 책망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거역, 미련함, 어두움이 떠나간다.

베드로는 십자가 수난을 예고한 예수님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명령했다. 베드로가 만약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복음의 전달자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책망을 받아들였다. 만약 책망에 억울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사탄은 베드로에게 들어와 예수님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책망할 때 베드로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그 속에 잘못된 영, 거역과 불순종의 영이 떠나갔다.

요즘 여러 위험한 사건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가정 안에, 직장 안에, 교회 안에 왜 많은 분쟁과 다툼들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까? 그것은 책망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책망에 대해 받아들일 영적 무장이 되었는가?

Similar Posts

  • 뜻을 따르는 사람이 가장 가깝다 /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 마태복음 12장 50절

    뜻을 따르는 사람이 가장 가깝다 2월 26일 목요일 / 마태복음 12장 50절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실까?”보다“내가 원하는 것이 잘 되게 해 주세요”에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를 말씀하십니다.가까운 사람은, 아버지의 뜻을 묻는 사람입니다.하루를 시작할 때“오늘 제 계획을 도와주세요”가 아니라“오늘 하나님은 무엇에 마음이 가 계십니까?”를 묻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 7월 21일

    열왕기하 3장 1-12절 1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 10월 1일 목요일 (전도서 5-8장)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5:1)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발을 씻어야 하고, 거룩한 곳에 들어갈 때에 신발을 벗어야 하는 규레를 지켜야 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즉 이것은…

  • 8월 16일 금요일

    에스겔 22장 17-31절 17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 1월 16일 목요일

    창세기 11장 31절 – 12장 9절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11월 8일 금요일

    시편 139편 1-12절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One Comment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아멘으로 응답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쭉 그렇게 습관이 된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또 괜히 튀는 행동을 했다가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면박을 받기 딱 좋은 구실인데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일이나 섬김에있어 더 깊은 물로 들어가기를 은연중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느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 경우 걸림돌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죽임을 당한 후,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던 궤를 다시금 다윗성으로 옮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의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이 기뻐 춤추는 것을 보고 어떻게 왕이되어가지고 염치없이 방탕한 자처럼 몸을 드러내었느냐고 책망합니다. 다윗은 이를 여호와앞에서 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앞에서 표현하는데에 자신의 체신이나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면 다윗을 비웃었던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적절한 비유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앞에서 자존심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동의하여 아멘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뿐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로 “ 엄마, 아빠! I love you! “ 를 듣고싶은 부모처럼 하나님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앞에서 너를 시인하겠다는 말씀도 생각이 나는군요.
    사람들은 나의 부족한 것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입술의 고백을 들으십니다.
    아멘!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