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교회를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정말 많이 듣는 교훈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 말씀의 중요함의 무게를 교회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란다. 그래서 그분은 죽으셨단다.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란다.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남이 나를 존귀히 여기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란다. 이게 바로 천국 아닌가?
나는 남을 더 귀하게 여기는데…. 바로 그 남이 내가 더 귀하단다.
바보들이 사는 세상… 천국이다… 이게 바로 교회다.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못난 우리를, 너무 귀하게 여기신 주님의 부르심… 그 부르심에 맞게 살라고 명하신다. 겸손과 온유로 하나가 되라신다.
남을 인정 못하고, 비아냥 거리며, 폄하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인정 못하고 비아냥 거리며, 평가절하해 버린다.
주님의 부르심이 거짓이다. 정말 그 거룩한 부르심에 감격하고 감사하다면, 바로 그 감사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내가 거짓인지, 주님의 부르심이 거짓인지… 심각하게 묵상해야 할 때이다.
부르심과 우리의 하나됨은 저울 추의 균형과 같아야 한다. 그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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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아멘. 예전에 이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만약에 너의 친구 옆에 친구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 친구에게 함부러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근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데 어찌 너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많이 듣고 자란 말이라 그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내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서 손해보기가 조금이라도 싫어서 야비하게 비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안에서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하다못해 남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서 이 세상 살아갈때 남을 위해 살아가다가 죽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때에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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