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토요일

 

출애굽기 15장 22-25절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약할 때 진정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일반적인 법칙과 다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역설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로다(고후 6:10)’ 등이 그것이다. 스스로 약함을 인정할 때 강할 수 있다는 표현도 이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들은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에 맞춰 춤추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온 후 먹을 물이 없어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왔다. 찬양이 원망으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이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3일 만에 찬양에서 원망의 대상이 되셨다. 

우리들은 이스라엘의 이중성에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이 없이 사막을 여행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게다가 성인 남성만 60만명, 가족까지 200만 명의 규모와 가축까지 먹을 물이 없으면, 이건 재난이다. 성경은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 이후 마라의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연약한 믿음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적 이후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강하다. 그래서 성도는 약할 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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