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15장 27-41절)

1. 예루살렘 총회는 가장 크게 화두가 되었던 할례의 문제를 기각시켰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의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 대신, 세 가지의 교회의 지침을 내립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 그리고 음행을 멀리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총회의 결론을 전해 들은 안디옥 교인들의 반응이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기뻐하더라라는 것이지요. 그들이 단순히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어서 기뻐하였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이 총회를 통해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지극히 신학적인 논리에 기뻐합니다. 요즈음 교회의 성도들은 어떠한 것에 기뻐할까요? 안디옥 교인들의 기쁨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복음에 민감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영원히 있을 주님의 말씀, 그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말씀이 말씀답게 선포되어질 때 여러분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2. 이러한 성숙한 믿음의 경지의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요? 물론 그들은 기도하는 교회였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기 위해 금식까지 해가며 노력했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36절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미 그들은 수년 전부터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말씀이 충만하였던 교회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고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말씀 충만의 결과요, 또한 이제 올바른 복음이 세워지는 것에 대한 기쁨도 말씀 충만이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말씀을 공부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말씀을 통해 세워지고 말씀을 통해 성장하며 말씀을 통해 결실을 맺습니다.

 

3. 바울은 바나바에게 한가지 귀한 제의를 합니다.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을 낳게 하였습니다. 개척교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또 다른 복음의 전도여행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좋은 일은 벌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긴장과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역사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헤어짐 만큼 큰 교훈이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툼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 다툼을 통하여 또 다른 길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이 모두가 말씀에 충실했기에 현재의 교회가 가능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현재 무엇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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