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월요일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시대와 예수님의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한주간 되길 축복합니다.    죽은 자를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 9:40).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기도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8월 22일 주일

  하나님의 능력과 기도에 관한 글 (제리 브리지스) 나눕니다.    귀신들린 소년을 치유하신 사건(마 17:14-20)은 언뜻보면 마태복음에 기록된 여러 치유 기적들 중의 하나일 뿐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예수님이 치유의 과정에서 믿음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 좀 독특하다. 마태복음 9장에 기록된 기적들 중에서는 믿음이 현저하게 나타나지만, 17장에서는 예수님이 강조하신 그 믿음이 모자라게 나타난다.   마태가…

8월 21일 토요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글 (스프라울) 나눕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추가 설명이 없기로 유명하다. 더욱이 마가는 마태나 누가에 비해 예수님의 비유를 덜 소개한다. 그러나 마가복음 4장에는 네 개의 비유들이 나온다. 마가는 비교적 긴 내용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시작하여 세 개의 짧고 간결한 비유들로 이어간다. 각 비유는 대부분의 비유들처럼 한 가지 핵심 개념을…

8월 20일 금요일

  복음에 관한 마크 데버 목사님의 글을 나눕니다.    복음의 목적이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인가? 의미를 추구하는 지적 탐구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정의를 실현할 목적인가? 혹은 빈곤 문제와 구제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가?    우리는 종종 이와 같은 삶의 특정한 문제 혹은 개별적 상황을 복음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8월 19일 목요일

  예수님의 못자국에 관한 귀한 글 (데이빗 메시스) 나눕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소중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그는 죽으셨을 때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셨다. 하지만 그 몸은…

8월 18일 수요일

  초대 교회 이야기를 통한 귀한 은혜의 글 (그리핀 걸리지) 나눕니다.    보수적인 침례교회에서 성장한 나는 성경 지식만큼 가치 있는 기독교인의 특징은 없다고 믿었다. 주일성경학교에서 성경 암송을 하면 상을 주었고 주일 설교는 늘 성경 말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열심히 성경 이야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치 베뢰아 사람과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8월 17일 화요일

  존 파이퍼 목사님의 글 나눕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히 11:37-39).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8월 16일 월요일

  영적 훈련에 관한 글 (브라이언 헤지) 나눕니다.    나는 여름에 텍사스의 개간되지 않은 굉장히 넓은 한 초원에서 메스키트 나무를 제거하는 일을 해본 적이 있다. 살초제 탱크를 등에 지고 손에는 분무기를 들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 사이로 끊임없이 걸었다. 이 일은 매우 지루한 일이었다. 방울뱀과 마주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곳은 해마다 방울뱀 제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를 보호할…

8월 15일 주일

  참 좋은 주일 입니다. 주일 설교를 듣는 영적 태도에 도전이 되는 글 (크리스토퍼 애쉬) 나눕니다.    어떻게 설교를 듣는가? 여러분은 이것이 어리석은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떻게 TV를 시청하는가에 대해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리모컨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설교를 듣는 것은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설교를 듣는 것은 수동적인 활동으로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