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다 보면 가장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설교가 큰 반응 없이 지나갈 때도 있고, 오래 품고 기도하던 성도의 삶이 쉽게 달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섬기려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복잡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목회자는 자연스럽게 ‘성과’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어야,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교회나 목회를 성과로 평가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교회는 결과를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신실함을 견디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가 점점 더 “잘하는 일”이 아니라 “버티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고백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그 의미를 당장 확인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보다, 하나님 안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은 늘 불확실한 현재를 살면서도, 확정된 미래를 믿고 걸어가는 작업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목회자는 쉽게 조급해집니다. 사람의 반응에 과도하게 흔들리고, 숫자와 평가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반대로 이 확신이 분명하면, 조용히 자신의 속도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는 점점 더 이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의미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저 주 안에 머물며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도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겉으로 박수치지 않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야말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 수고는 조용하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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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성경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그 의미를 당장 확인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보다, 하나님 안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은 늘 불확실한 현재를 살면서도, 확정된 미래를 믿고 걸어가는 작업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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