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월요일

 

유익한 글 (레이첼 존스) 나눕니다. 

 

내가 속한 소그룹의 줌(Zoom) 모임을 하고 있을 때, 육아에 지친 한 아빠가 18개월 된 아들이 유아용 좌석에서 이유 없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화상회의에서 하는 것처럼 쟤를 음소거(on mute)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몇 개월 전만 해도 통하지 않을 농담이었지만 격리 기간인 요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유머 소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SNS에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뉴스도 있지만, 정장 드레스를 잘 차려 입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러 나오는 사람들 사진이나 운동 경기가 아닌 자신의 일상을 중계하는 스포츠 아나운서의 동영상 등 우리를 웃게 할 요량으로 올린 것들도 많다. 

친구들의 얼굴을 다시 직접 볼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대신 우리는 비공식적인 여섯 번째 사랑의 언어인 인터넷 밈(meme)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계속 표현한다. 은혜가 더할수록 GIF 그림파일들도 넘쳐난다.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 가고, 슬픔에 빠졌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내가 웃어도 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당연히 들 것이다. 우리가 만일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않고 오히려 그들 앞에서 즐거워한다면 확실히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롬 12:15). “웃을 때”가 있는가 하면 “울 때”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전 3:4). 사도 야고보 역시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할 때에는 우리의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 촉구한다(약 4:9). 이 세상에는 반드시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이 세상에는 웃기지 않은 일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웃게 하는 일들은 여전히 많다. 

어려운 때가 닥치면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유머에 기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재미를 추구할 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유머를 다루는 법은 우리의 성품, 문화, 그리고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웃기는 것이 마치 경건함과 같은 수준의 덕목인 것처럼 유머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만, 유머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데 우리 모두에게 좋은 성경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팬데믹의 시대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유머를 즐겨야 할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웃음은 우리에게 양약이다

많은 연구가 이미 밝혔듯 웃음은 우리의 심신 건강에 매우 이롭다. 웃음이 스트레스를 낮춰주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심지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성경이 말한 바를 과학이 그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웃는다고 해서 모든 병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웃음은 우리의 기분을 한결 낫게 해줄 수 있다. 

웃음이라는 양약을 좋은 때나 어려운 때 언제든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잠언 15장 15절은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로 시작한다. 그러나 절 후반부에서 잠언 기자는 고난 받는 자들의 어려움을 부자들의 희희낙락과 대조하기보다 일종의 반전을 제공한다.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이 팬데믹 위기는 분명히 비참한 실제적 사건이다. 하지만 마음이 즐거운 자들은 잔치할 수 있는 이유를 여전히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 감정이 마치 단순한 것인 양 다루지 않는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잠 14:13)는 말씀처럼 희비가 엇갈리는 복합적인 감정을 누구나 느껴 보았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웃으라 격려하지만 삶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2. 웃음은 우리의 확신을 드러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잠언 31장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 “후일을 웃으며”(25절)라고 묘사한다. 이 여인은 주권자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여인의 그러한 확신은 그의 밝은 심령을 통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확신은 말로는 쉬워도 실제로 느끼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염려에 사로잡히는 때가 오면 우리는 유머를 통해 서로의 두려움을 줄여 나갈 수 있다. 우리 마음 속에 걱정이 바람 가득 든 풍선처럼 커졌을 때는 친구가 해주는 적절한 농담 한 마디가 그 풍선에 꽂아 바람을 뺄 수 있는 바늘 역할을 한다. 문제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자랄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롬 8:35)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롬 5:2)할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회복할 때, 우리는 더 웃을 수 있다. 

3. 웃음은 우리를 겸손케 한다

내가 아는 가장 웃긴 사람들 중 몇몇은 농담을 경건한 겸손함으로 할 줄 아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라도 다른 이들을 웃게 하지만 타인들을 깎아 내리면서까지 사람들을 웃기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경건하게 웃기는 방식이다. 그들의 유머는 그들의 겸손을 드러낸다.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 모두는 최근의 팬데믹 사태로 인해 겸허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가 인류의 암울한 “일반(적인 숙명)”(9:1–6)에 대해 논할 때, 뒤이어 나오는 적용 부분에서는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중략] 즐겁게 살지어다” (9:7–9)라고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주말을 보내는 것에 대해, 내 친구 한 명이 “소소한 일들을 즐기면서 주말을 최대한 잘 활용해보려고 하고 있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의미다. 

이제 SNS에서 뭔가 웃기는 것을 본다면 그저 그대로 즐기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기 때문에, 또한 유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기때문에 우리는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참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최악의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래서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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