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주일

 

말씀 읽기에 관한 글 (테리 존슨) 나눕니다. 

 

나는 1960-70년대 전형적인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랐다. 그 교회는 성경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며, 남부 캘리포니아의 여러 교회와 농장이 풍부한 캘리포니아 중부 계곡과 교단적으로 연결된 교회였다. 이 회중은 처음에 황량한 지대와 대공황의 고난을 피해 서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우리 교회는 우리와 유사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좋은 교회, 복음주의 교회, 신실한 교회였다.

그러나 나는 설교 본문이 된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교회 예배 중에 성경 낭독을 들은 기억이 없다.

복음에 대한 소홀함

이웃 교회들의 이러한 모습은 10대와 20대 초반에 내가 한 번쯤 방문했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모든 대형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그 지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교회 예배에서 많은 분량의 성경 읽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오늘날 전형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특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비되는 성공회 교회의 성경읽기

나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성공회신학대학 Trinity College에서 2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예전적 교회나 비예전적 교회, 진보 교회나 보수 교회 등 성공회에 속한 수많은 지역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그 교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바로 기도서와 연간 일정표에 따른 성경 읽기였다. 구약, 신약의 서신, 복음서, 시편 등 모든 성경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읽기가 풍요롭고 계속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 있었다.

대체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공적 예배에서 많은 분량의 성경을 읽지 않는다. 성공회 신자 중 일부는 자유주의적 회의론자이며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왜 복음주의 교회는 많은 분량의 성경 읽기를 하지 않을까?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고 아마도 광고나 가벼운 대화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설교 본문 외에는 성경 읽기가 생략되어 있다. 왜일까?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안에서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적 예배에 많은 분량의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지루한 일이며, 지루하다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성경을 믿고 무오성을 옹호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단순한 성경 읽기가 공적 예배에서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 자체의 증언

나는 ‘Worshiping with Calvin’에서 J. C. 라일(J. C. Ryle, 1816-1900)을 포함하여 이 단순한 공적 성경 읽기로 변화된 사람들의 예를 제시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에게 성경 읽기를 통해 변화된 것에 대한 이야기식 간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에 이르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령한 젖으로 자라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은혜의 말씀이 우리를 세워 영원한 기업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열매를 맺으며 자라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며,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언한다(벧전 1:23-25; 롬 10:17; 벧전 2:2; 요 17:17; 행 20:32; 골 1:6; 히 4:12; 롬 1:16; 참조 엡 6:1, 살전 2:13, 딤후 3:15, 렘 23:29, 사 55:11, 살전 1:5, 약 1:21). 이 외에도 성경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의 전환점

나에게 전환점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1977년 가을 밤에 있었다. 그 때 나는 트리니티 학생들 몇 명과 함께 브리스톨 다운스를 가로질러 보수적인 성공회 교회인 St. Mary’s Redcliff Church로 걸어갔다. 예배 중간쯤에 한 남자 성도가 일어나 구약 성경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낭독했다. 그는 그 말씀을 천천히, 주의 깊게, 그리고 강조하여 읽었다. 효과는 강력했다. 그리고, 다이나믹했다.

그러자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의문이 생겼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왜 확장된 거룩한 독서(역사적 개혁주의 실천)를 지속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성경 읽기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의 모든 요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잘 읽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읽는 사람은 이해와 뉘앙스를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성경 본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회중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구차한 변명이다.

우리가 성경이 스스로 증거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성경 읽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XXI.3-5)와 그 자매고백서(London, Savoy)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된 예배의 필수 요소로 확인된 5개 항목 중 하나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공적 예배에 관한 지침서인 예배모범(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 of God)은 두 차례의 주일 예배에서 모두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각각 한 장씩을 읽도록 권하고 있다.

공적 예배에서 성경을 적어도 한 장씩 읽는 방식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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