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토요일

 

인간의 욕망에 관한 글 (스프라울) 나눕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처음 몇 장을 통해  초기 인류 역사의 사건들을 다시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어떻게 인류가 최초의 욕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예화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일 것이다. 1절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라고 밝히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원래 타락 이전의 피조 세계에 보존되었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에덴동산에는 통역자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언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비록 창조의 조화를 파괴하려는 죄의 침투가 있었지만,  적어도 인류가 팽창하는 처음 몇 해 동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언어로 말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의 조화 가운데서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인류는 같은 언어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창 11:4). 처음부터  인간의 욕망은 하늘의 꼭대기에 이를 정도로 웅장한 성읍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람의 업적을 자랑하고자 기념비를 내세우는 인간 본성의 일부였다.  그 증거로 우리는 세상의 여러 도시에서 화려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파리의 거의 모든 지점에서 에펠탑을 볼 수 있고,  뉴욕의 관광객들은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게 된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빼놓을 수 없는 증거이다.  우리는 자신이 의미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또 죽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기억되게 하기 위해 벽돌,  회반죽,  강철,  유리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왔다.

성경이 표현하는 그들의 정서를 느껴 보라. “우리 이름을 내자”(창 11:4). 19세기의 무신론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하기를,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은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인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했다.  타락한 인류를 예부터 유혹하는 실체가 바로 이 권력욕이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뱀의 유혹에 이끌렸던 에덴의 유산이다.  그 유산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도록 부추긴다. ‘왜 하나님이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가?’  ’왜 이 세상의 기념비는 오직 창조주의 찬양과 영예에만 국한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는가?’ ‘ 우리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가?’ ‘ 우리가 함께 모여 한 성읍을 건설하자.  심지어 하나님도 무너뜨릴 수 없는 기념비,  영원히 존속될 기념비를 만들자.  조각상,  성벽,  망루,  마천루,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많은 것들을 만들자.’

나는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인) 월터 크롱카이트와 예전의 몇몇 우주인들이 최초의 달 착륙에 대해 묘사하는 바를 뚫어지게 주시했던 적이 있다.  니일 암스트롱이  “그 사건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완전히 새로운 개척지를 정복한 이 믿기 힘든 업적에 대해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흥분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내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의 말은 “ 하나님,  이는 주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에덴에서 우리에게 온 땅을 통치하라고 주셨던 사명의 성취입니다”라고 하는 고백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업적과 바벨탑의 건설을 또다시 자랑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땅을 통치하도록 부름 받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영광을 위해 땅과 하늘을 지배하고자 애를 쓴다.  이는 바벨에서부터 진행되었던 일로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정당한 과업을 왜곡하고 악하게 뒤트는 일이다.  건축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에도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한 일들은 하나님이 창조의 때에 우리에게 주신 과업이지만,  오직 그분의 권위 아래서만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한 일들은  코람 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권위 아래서,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어떠한 반역이 일어났는가?  인간은 자신들의 왕국을 향한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해 왔다. 인간인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 이름을 높이고자 했다.  바벨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간적 사업을 대표하는 사건으로서, 그들은 바벨에서  “우리 함께 한 성읍을 건설하자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도망자,  방랑자,  무명인,  환영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말이었다. 이는 단지 고대 인류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다. 

이제 창세기 11장 5절의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라는 말씀을 읽어 보자.  하나님은 인간이 건설한 성읍을 감찰하셨고,  그분이 본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창 11:6-9).

역사상 인류가 시도했던 가장 큰 건축 프로젝트는 하나님께 저지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혼란과 혼돈으로 끝을 맺었다.

인간 자신의 궁극적인 왕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혼란으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성공 역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숨겨진 죄,  온갖 은밀한 생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전  12:14).  인간의 영광을 위한 건축은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만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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