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목요일

 

교제에 관한 글 (토니 메리다) 나눕니다. 

 

우리는 바울의 삶에서 그가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모습,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친구 관계에서 드러나는 바울의 모습이다. 로마 제국 전역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할 때, 바울은 그 사역을 혼자 하지 않았다.

바울은 풍성한 관계를 누린 사람이다. 그는 친구와 함께 여행하고 머물렀으며, 또 친구를 찾아가기도 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설교하며, 함께 매를 맞았다. 투옥되었을 때에는 심지어 그들과 함께 감옥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바울은 친구를 격려했고, 또 친구에게 격려를 받았다. 때로는 그들과 서로 다른 의견으로 논쟁하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기도 했다.

사도행전을 조금만 읽어 봐도, 바울이 친구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나바, 디도, 실라, 누가, 브리스길라, 아길라, 루디아, 오네시보로, 에바브로디도, 마가, 요한, 에베소 장로들에게 그런 섬김을 보였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서른 개가 넘는 이름을 나열하는데 목록 전체에서 애정이 흘러나온다. 이 목록은 복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나타낼 뿐 아니라, (인종, 계급, 성과 관련하여) 아름다운 어울림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오늘날 복음중심적 사역을 할 때,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에 집중했던 바로 그 설교 패턴을 우리도 동일하게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친구에게 헌신했는지도 강조해야 한다.

바울은 무엇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교제했다. 이처럼 위대한 사도조차도 친구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데에 힘썼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친구 관계로부터 얻는,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세 가지 유익이 있다.

1. 교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관계를 지향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에덴 동산에서 모든 것이 영광스럽고 ‘심히 좋았지만’, 한 가지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혼자’라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죄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낙원에 있는 사람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왜 그의 마음은 허전했을까? 팀 켈러는 다음과 같이 적절한 설명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나님은 친구 없이는 낙원조차 즐길 수 없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아담은 하루 종일 완전하게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우리는 나무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마음 아파한다. 우리는 그들과의 교제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살면서 성취했던 것들(저술, 학위, 상패, 집, 열쇠 등)을 놓지 않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을 붙잡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친구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 위로

하나님은 종종 다른 사람의 존재와 사역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신다. 디도에 대하여 바울이 한 말을 기억해보라.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 7:5-6). 하나님은 바울에게 힘을 주고 그를 격려하기 위해 디도를 보내셨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라고 고백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친구이다.

우리 마음은 변덕스럽고, 죄성은 절대로 쉬지 않으며, 사탄은 맹렬하게 활동하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전이 시급하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믿음의 싸움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3. 기쁨

바울은 로마에 가려는 계획을 알리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전했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로 보낼 긴 편지를 마치면서, 마음에 남아있는 여전한 바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희와 사귐으로 기쁨을 [누리고 싶고]”(롬 15:24), “너희와 함께 편히 쉬[고 싶다]”(롬 15:32). 비록 바울은 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더 깊은 기쁨과 안식은 직접 만날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도 요한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우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이 1:12).

그러니 페이스북 친구로 만족하지 말라. 우리는 전인적인 존재다. 온라인에서도 우리 자신의 일면을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그 세계에서는 충분한 교제를 기대할 수 없다. 인터넷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함께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느끼고, 상상하고, 반응하며, 만지거나 움직이는 등의 비언어 행위를 통해서도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교제를 연습하라

우정에 관한 잠언 구절들을 적용하라.

• 일관성: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 정직: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6).

• 긍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복음 안에서 사귄 충성된 친구는 하나님이 주신 값진 선물이다. 그리고 이런 친구는 궁극적인 벗으로서 우리의 많은 죄를 가려 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요 15:15).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크리스천 우정을 실천하는 개개인을 통해 타인에게로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우리가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죄인의 친구 되시는 그분을 높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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