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화요일

 

우리의 기쁨을 위한 질투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도 안셈과 같은 방식으로 그 완전한 존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참된 미덕의 본질’(The Nature of True Virtue)이라는 작품에서 하나님을, “모든 존재 가운데 무한하게 위대하신 최상의 존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런 설명이 옳다면, 그에 함축된 의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짓게 된다. 왜냐하면 그 질투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기 위해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 자신의 기쁨과 상치되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쁨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밝히듯이,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 명제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표현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혹 이렇게 다시 진술된 문장을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검토했더라도 그 의미에 십분 동의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이기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은 전혀 상반된 답변을 만나게 된다. 바로 하나님이 완전한 존재인 이상, 그래서 그보다 더 위대한 다른 대상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인 이상, 그분은 당연히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영원한 행복을 위해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최상의 존재이므로, 최상의 기쁨과 행복도 오직 그분 안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사랑으로 충성을 명령하실 수 있다. 즉, 그분 자신의 영광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라는 명령을 이기심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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