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월요일

 

갈라디아서 2장 1-10절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말씀을 담으면, 말 그릇이 달라진다. 복음의 핵심은 성육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의 삶을 바꿔 일생을 지배한다. 그래서 말씀을 담으면 말 그릇인 인생이 새로워진다. 그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체험은 세 종류이다. 첫째, 사도 바울의 다메섹 체험이다. 박해자가 전도자가 되는 극적인 체험이지만, 하나님의 큰 사명을 위한 변화이다. 둘째. 두 제자의 엠마오 체험이다. 낙심과 실의의 순간, 전해진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변화이다. 셋째. 디모데의 체험이다. 비록 극적인 체험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점점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체험이다. 

교회 안의 거짓 성도들은 바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할례의 필요성을 강요했다(3~4절).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신 바울의 영적 동력은 바로 순수한 복음이었다(5절). 바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품었던 진리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자(야고보, 게바, 요한 등)와 다르지 않았다. 율법, 할례 등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한낱 도구일 뿐이었다. 

결국,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유대인에게,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소명이 있음을 깨닫고 친교의 악수를 나눈다(9절). 서로가 다른 사명이 있는 자들이 연합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사역만을 우선하려는 욕심 때문이거나, 상대방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명이 다를 뿐 말씀이 실체가 된 성육신의 모습은 같다. 

12월 12일 월요일”에 대한 3개의 생각

  • 아멘…

    “연합”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방향을 가진 자들과의 연합은 정말 어려운거 같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명으로 확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면 더욱더 어려울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종교생활을 할 수록 자신의 경험안에서만 보는 좁을 시야를 갖게 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자들은 그런 틀에서 자유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개인의 성품과 개성을 인정하시고, 그 사람에 맞게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또 훈련시켜주시기에 각자 다른 사명도 주셨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발현된 상대의 모습이나 사명이 내 경험과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저의 시야를 더욱더 넓혀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두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들에게 덕을 끼칩니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댓글을 쓴다는 것은 원글을 충분히 읽고 이해했음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어휘를 선택하며, 단어들을 정비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더욱이 글을 남기면 자신을 책임져야 할 숙제를 만드는 것이기에 더욱 전심전력하게 됩니다.

    경건의 성숙을 위한 많은 장치 중에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글로 남기는 것을 적극 권면합니다.

  •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리고 이곳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혼자 큐티하고, 큐티노트 쓰고 기도하면서 그 시간이 회복된 것도 감사하고 기뻤지만,
    혼자 하다보니 청년부때 하나님을 향한 그 뜨거운 갈망과 갈급함을 함께 나누던 공동체가
    더욱 그리워졌었습니다.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목사님 말씀처럼 글을 남기기 위해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며 머무는 시간을 갖는것이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알려주신대로
    경건의 장치를 더 늘려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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