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수요일

 

4. 파괴하기

파괴는 훨씬 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다른 어떤 목적보다도 심판이나 멸망에 소금이 사용된다는 성경 구절이 더 많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오실 날을 묘사할 때 언급하신 이야기이다 (눅 17:3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면 그들의 땅이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할 것”(신 29:23)이라고 경고한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했을 때, 세겜 사람들이 그에게 반역했고, 그는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응수했다(삿 9:45).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시 107:34)라고 묘사한다. 복음서에서 가장 맹렬한 심판의 구절 중 하나가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이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9). 고대 근동에서 소금은 악에 대한 심판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제자들의 목적이 다 같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고 악을 멸하며 정욕이나 탐욕이나 살인이나 불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소금맛 나는 그리스도인을 세상 속으로 흩어지게 하신다.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교회의 존재 자체가 원수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이고, 또한 바울이 말한 “멸망의 증거”(빌 1:28)의 역할을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를 때 우리가 만날 박해를 묘사한 바로 직후에 우리가 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종종 교회는 이런 식으로 살지 못한다. 악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악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될 것까지도 다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심판에 관한 그분의 말씀은 거의가 다 믿지 않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것이다. 우리도 소금에 절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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