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토요일

 

유익한 글 (마샬 시걸)을 나눕니다. 귀한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썼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3-10).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창세 전에 택했다고, 그의 뜻에 따라 그들을 아들이 되도록 예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에베소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다 해당된다.  

이 서신서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선택 교리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이 구절을 쓴 이유가 다름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이 이 구절에서 조금도 힘을 얻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이 구절 때문에 더 걱정하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바울이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쓴 선택 교리가 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까? 그 대답은 바로 다음 질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창세 전에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면, 내가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의 몸에 특별한 표시를 남기지 않았다. 선택받은 자들은 ‘선택받음’이라는,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특별한 문신을 오른쪽 귀 뒤 또는 몸의 다른 곳에 가지고 있지 않다. 선택받은 자들은 어떤 특정한 인종 또는 민족도 아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세상 모든 족속과 나라에 다 있다. 그러면 내가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선택받은 사람인지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고 17세기 초에 열린 도르트총회(Synod of Dort)에서 다뤄진 문제이기도 하다. 도르트총회는 개혁 신학자들의 모임으로서 당시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의 가르침 때문에 야기된 논쟁을 처리하기 위해서 모였다. 아르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러 교리에 있어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다른 노선을 취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선택 교리였다. 알미니안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진실한 믿음 속에 있는 믿음과 인내’는 ‘선택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가르쳤다. 다른 말로 하면, 알미니안은 ‘조건부 선택’ 교리를 가르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하나님은 누가 믿음을 가지고 또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킬지를 미리 알고 있고, 그 예지에 따라서 구원할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과 상충한다는 믿음을 근거로 도르트총회는 그 교리를 거부했다. 그 대신 도르트총회는 조건없는 선택 교리를 가르쳤다. 바로 이 교리는 도르트신조(Canons of Dort)의 첫 번째 부분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1장에서 6장까지 선택 교리의 맥락을 설명한 이후, 7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목적에 따라서 이뤄진 것인데, 그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은 순전한 그의 선하신 주권에 따른 은혜를 따라 최초의 상태로부터 타락하여 죄와 파멸의 결과 속에 사는 전체 인류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일정한 숫자의 사람들을 선택했다. 이것은 선택받은 자들이 그 본성에 있어서 택함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거나 더 가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택받은 자들도 동일한 비참함 가운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중보자로, 또한 택한 자의 머리와 구원의 기초로서 세운 그리스도를 통해 이 일을 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통에 이르게 한다.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믿음을 갖도록 함으로써 그들을 의롭다 하고 더 나아가 영화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을 보호하고 영화롭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스런 은혜의 풍성함을 찬양하게 함으로 당신의 자비함이 드러나도록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우리 중에서 앞으로 믿을 것 같은 사람을 미리 알아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선택했기에 우리가 믿게 되는 것이고, 이는 오직 한 가지 조건에만 달려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선하신 주권에 따른 은혜’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그의 선하신 주권에 따른 은혜’에 따라 선택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신조는 바로 12장, ‘선택 받았다는 확신’에서 그 문제를 다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구원을 받는 선택에 대한 확신은 그 확신에 대한 정도와 방법이 다양하지만, 선택받은 자에게 때가 될 때 반드시 주어진다. 그런 확신은 결코 하나님의 숨겨진 깊은 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의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난, 구원받는 자의 열매를 확실하게 맺을 때 주어진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과 충성스런 경외심, 죄에 대한 거룩한 탄식, 그리고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갈증 등이다.

이 내용을 토대로 해서 살펴볼 몇 가지가 있다. 

1. 모든 기독교인이 다 같은 강도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확신은 종종 의심과 뒤섞인다. 

2. 하나님의 숨겨진 일들을 조사한다고 선택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귀 뒤에 있는 신령한 문신 같은 것을 찾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일에 접근할 수 없고, 그렇기에 하나님의 시점에서 이뤄진 선택을 놓고 우리가 지식을 통해서 그 여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선택 여부를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난, 구원받는 자의 확실한 열매”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과 충성스런 경외심, 죄에 대한 거룩한 탄식, 그리고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갈증 등”이다. 예수님은 열매를 통해서 알 것이라고 말했다(마 7:16). 당신 또한 당신의 열매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다고 도르트신조는 말한다. 

자, 어떻게 선택받았음을 알 수 있을까? 선택받은 자의 열매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봄으로써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직하게 자신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는지, 내 죄를 놓고 애통하고 또 회개하는지, 성령의 열매를 나날이 더 맺고 있는지,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지,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선택받은 사람의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택은 보이지 않는 원인이다. 그러나 영적 열매는 눈에 보이는 결과다. 우리 눈에 선택의 원인은 보이지 않아도 선택의 결과는 관찰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삶에서 선택받은 사람의 열매가 드러난다면 나도 또 다른 사람도 선택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만약에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내가 선택받지 않았기 때문일까? 현재 우리는 죽음의 육신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결코 죄 없는 완벽한 상태에는 이를 수 없다(롬 7). 그러므로 선택받았다면 죄가 없는 완벽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간주하는 한, 계속해서 의심에 뒤덮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선택받은 자의 열매는 이 세상에서 죄 없는 완벽함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애초에 예수님이 제자들이 당장에라도 죄없는 완벽함에 이르기를 바랐다면, 그런 기도를 가르쳤을 리가 없다. 육신의 정욕을 죽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죄를 지었을 때,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거룩한 애통과 진실한 회개라는 선택받은 자의 열매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신다(요1 1:9).

하나님의 숨겨진 일을 찾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도르트신조가 가르쳐주는 대로 선택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을 읽고 이 선택에 관한 교리가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은혜로 인한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모든 영광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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