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월요일

 

감사에 대한 어는 한 평신도(로라 벡스터)의 간증의 글 나눕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들은 첫 번째 정신질환을 앓았다. 조현병의 변종인 분열 정동병 진단을 받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그에게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가족인 우리도 그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5년 전, 아들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4년 동안 다섯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학교도 여러 번 휴학 해야만 했다. 아들의 행동은 이상했다. 소외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낙담하는 모습이 때로는 무섭게 느껴졌다. 많은 약을 먹었다. 어떤 약은 비쌌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또 어떤 약은 악몽을 꾸거나 공포를 느끼게 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마지막 입원 후, 의사는 그의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보호 기관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조현병은 인구의 약 1%를 괴롭히는 파괴적인 정신질환이다.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환청, 환시, 망상, 횡설수설하는 말, 의욕감소 그리고 무감각 등이 있다. 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 친구를 사귀거나 직장을 다니는 것, 심지어 정기적으로 옷을 갈아 있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나는 엄마로서 5년 동안이나 울며 기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감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명절 연휴에는 특히 힘들었다. 물론 감사 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음식, 가족, 친구들, 집 등. 그런데 이런 감사의 제목도 사랑하는 아들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하지만 현재의 나는 어떻게 감사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세계 2차 대전 중 네덜란드 레지스탕스 일원이었던 코리 텐 붐은 벼룩이 가득한 독일 강제 수용소의 생활을 기록했다. 코리의 영적 자매인 베시는 코리에게 벼룩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만큼 감사를 실천하는 생활을 하라고 말했다. 코리는 베시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놀랍게도 교도관들은 죄수들에게 전례 없는 자유를 주었다. 이런 자유가 주어진 것은 경비원들이 벼룩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코리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코리가 나치 수용소에 있는 벼룩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사랑하는 아들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지만 말이다. 5년이 지난 후, 내 질문의 대답은 기적처럼 “그렇다”가 되었다. 이제 아들의 아픔과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4가지의 축복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1. 동지애

아들의 정신병은 고통스럽고 남에게 드러내기 싫은 일이다. 그것은 분명 우리 가족 모두에게 위기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위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위기가 한편에서는 감사와 축복의 상황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교회 가족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조현병에 관한 블로그와 회고록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이런 고통을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국에 있는 ‘온라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서로 격려하고 위안을 얻었다. 위기를 만나기 전까지 결코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역설적이겠지만 아들의 병을 통하여 만난 관계에 감사했다.

2. 연민

건강한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종종 수치심을 느끼거나 소외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솔직하게 나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피했었다. 그러나 아들의 경험을 통해 정신적 질환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들은 여전히 내 아들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형상이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의 위기를 통해 내 주변의 고통을, 특히 사회적 기대에 못 미치는 성인 아들을 둔 부모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제는 불안과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었다. 아들의 고통을 통해 내 마음을 부드럽게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3. 교감

C. S. 루이스가 쓴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소리치신다”. 내 세계가 무너졌을 때 하나님께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기도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도 늘었다. 모든 예배에 집중했고 눈물로 가득한 찬양을 했다. 욥기를 자세히 읽으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건 아닌지 궁금했다. 아들의 삶과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았다.

여러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의 소망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내가 걷는 걸음마다 함께 걷고 계심을 발견했다. 욥과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서 경험하게 되었고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욥 42:5).

4. 만족

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0). 고통이 찾아왔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이렇지 않았다. 선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들의 마음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서서히 타락한 세상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번영신학 설교자들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건강과 부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나와 아들의 삶의 의미는 부유한 환경, 목적의 성취,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멋진 순간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거하는 그곳에서 신실하게 남아 있기를 원하신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노력 끝에 얻은 교훈이기에 감사하다. 

감사를 위한 싸움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에 당신의 어려움과 위기 상황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의 “벼룩”에 대해 이야기하라. 당신이 싸우고 있는 정신적 질환, 외로움, 실직의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감사를 위해 싸워라. 바울은 믿는 자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라고 묘사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당신에게도 이 말씀은 적용된다. 상하고 깨진 마음을 그분께 가져가라. 마음껏 울라. 그리고 주신 것에 감사하라.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