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금요일

 

칭의와 성화에 관한 귀한 글 (존 파이퍼) 나눕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 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칭의는 우리를 의롭고 완전하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우리가 완전하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칭의란 오직 믿음으로 예수와 영적으로 결합한 덕에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된 법적 지위다.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로 들어서기 위해 당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거나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저 당신이 완전하다고 선포하신다. 당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이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

성화는 하나님의 영과 말씀을 통해 당신을 차차 또는 순식간에 자신의 아 들의 형상과 같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따라서 성화 과정에서는 실 제로 우리 행위가 의로워지고, 결함은 극복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칭의와 성화는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가? 핵 심 구절은 히브리서 10장 14절이다. “그[그리스도]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새번역), 이 말씀을 생각해 보자. 누가 영원히 완전하게 되었는가? …하게 하셨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영원히 완전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완전해지고 있는 자들이다. 성화되고 있으며, 거룩하게 되고 있다. 그분이 당신을 완전히 거룩하게 만드신다. 누구를 말인가? 거룩하게 되고 있는 자들을 말이다. 즉 당신이 민음으로 거룩하게 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거나 완벽하거나 의롭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삶에 있는 결함을 극복하려고 날마다 애쓸 힘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이것을 바꾸어 “그래, 하나님은 완벽을 요구하셔. 나는 완벽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어. 이 정도면 하나님이 나를 보고 ‘이 녀석, 꽤 잘하고 있군, 그렇다면 너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거나 완벽하다고 여겨 주지’라고 하실 거야”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정반대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과 그분의 완전한 삶을 믿는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믿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 신다. 그러면 그분의 완전함이 우리의 완전함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그리스 도 안에서 완전하게 섰다는 증거는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날마다 그분의 약 속을 믿어 우리에게 존재하는 결함을 극복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자, 나의 권고는 간단하다. 이것을 뒤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은 이것을 뒤바꾼다. 다른 모든 종교도 이것을 뒤바꾼다.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일하고 노력하여 하나님께 선하게 보이려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절대 그곳에 이를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인정하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의로움 때문에 우리는 평생 동안 우리가 이미 된 존재를 이루며 살 아가는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