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주일

 

잠언 1장 23-26절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사탄은 사탕발린 달콤한 말로 썩게 하나, 지혜는 쓴 말로 책망하고 강건하게 한다. 책망은 히브리어로 ‘토카하’인데, 비난, 견책, 징계, 꾸지람, 논증 등의 뜻을 포함한다. 책망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이 돌이키도록 이 세상을 향해 책망한다. 책망을 받지 않는 것이 재앙과 두려움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지혜의 요청을 듣고 마음을 돌이킬 때 지혜는 지성을 전수해 준다.

그렇다면 왜 지혜의 말로 책망할까?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에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다. 현대 교육은 책망과 징계를 잘못된 교육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잘못을 책망하라고 한다. 책망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거역, 미련함, 어두움이 떠나간다.

베드로는 십자가 수난을 예고한 예수님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명령했다. 베드로가 만약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복음의 전달자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책망을 받아들였다. 만약 책망에 억울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사탄은 베드로에게 들어와 예수님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책망할 때 베드로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그 속에 잘못된 영, 거역과 불순종의 영이 떠나갔다.

요즘 여러 위험한 사건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가정 안에, 직장 안에, 교회 안에 왜 많은 분쟁과 다툼들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까? 그것은 책망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책망에 대해 받아들일 영적 무장이 되었는가?

4월 24일 주일”에 대한 1개의 생각

  •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아멘으로 응답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쭉 그렇게 습관이 된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또 괜히 튀는 행동을 했다가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면박을 받기 딱 좋은 구실인데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일이나 섬김에있어 더 깊은 물로 들어가기를 은연중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느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 경우 걸림돌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죽임을 당한 후,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던 궤를 다시금 다윗성으로 옮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의 아내였던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이 기뻐 춤추는 것을 보고 어떻게 왕이되어가지고 염치없이 방탕한 자처럼 몸을 드러내었느냐고 책망합니다. 다윗은 이를 여호와앞에서 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앞에서 표현하는데에 자신의 체신이나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면 다윗을 비웃었던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두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적절한 비유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앞에서 자존심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동의하여 아멘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뿐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로 “ 엄마, 아빠! I love you! “ 를 듣고싶은 부모처럼 하나님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앞에서 너를 시인하겠다는 말씀도 생각이 나는군요.
    사람들은 나의 부족한 것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입술의 고백을 들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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