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목요일

 

누가복음 10장 30-37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참 이웃은 힘들 때, 곁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나의 섬김이 필요한 사람이 내 이웃이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이웃에 대한 범위를 넓혀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이웃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웃의 범위가 재설정 돼야 유대인들의 편협한 생각과 삶도 재설정된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 비유는 유대인들의 뼈를 때리는 이야기다.

본문 말씀은 1세기 청중들의 세계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사마리아인이 선한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는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 자기 고정관념 속에 담긴 기피 인물이 누구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또한, 생각의 틀을 바꾸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절)라는 피해갈 수 없는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비록 빗댄 이야기이지만,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의 위선적 모습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계기를 제공한다. 예수님을 테스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 더 강력하고 예리한 질문으로 율법 교사에게 되돌아온다. 율법 교사는 자신이 율법을 가르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 깊은 곳에서부터 요동치는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 다룰지는 당사자의 몫이다. 회개하면 구원에 이르고 회피하면 죄에 구속된 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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