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월요일

 

갈라디아서 4장 21-16절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믿음에는 신뢰의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은 의와 생명을 얻는 축복이다.  바울은 “내게 말하라.”라고 명령한다. 여기에는 영적인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아직도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을 지킴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는 오해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육체의 자녀가 아닌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예로 든다. 하나는 여종에게서 난 아들이고,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다. 이스마엘은 맏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지 못했다. 그는 여종 하갈로부터 육체를 따라 났기 때문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두 번째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았다. 그는 사라에게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낳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유다. 두 여자는 두 언약을 상징한다. 하갈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다. 시내산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다. ‘같은 곳이다’라는 말은  ‘같은 줄에 서다’라는 뜻이다. 그 자녀들과 더불어 죄의 종노릇 하는 줄에 서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율법, 옛 언약은 그들을 율법의 종,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 곧 약속의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새 언약이다. 이삭의 후손 예수를 통해 새 언약이 왔다. 새 언약은 율법의 정죄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그 약속을 믿는 자들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달콤하지만 죄악 된 옛 생활을 그리워하는 육체의 자녀인가? 믿음의 능력으로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약속의 자녀인가? 

12월 19일 월요일”에 대한 1개의 생각

  • 약속, 자유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약속이 아닌 육체를 따른 결과와
    약속이 성취됨으로 이뤄지는 결과는 너무 다른 것임을 보게 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이
    때로는 여전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헷갈릴때도 있고
    그 때는 눈치보지 않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편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얽매인 삶이었기에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진정한 자유가 있는 약속의 자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